제2화 오래, 깊게, 그리고 끈질기게

- 캄보디아 전 국왕 시아누크 사망으로 본 중국식 ‘친구 사귀기’ -

 

 

과거 중국 베이징과 북한 평양에 ‘망명객’의 신분으로 자주 나타난 인물이 있다.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다. 그가 15일 베이징에서 별세했다. 조국인 캄보디아를 두고 그는 왜 베이징에서 세상을 떴을까. 그는 생전에 “중국은 내 제2의 조국”이라고 공언해왔다. 무엇이 캄보디아의 국왕으로서 동아시아 국제정치판의 유력한 정치인이기도 했던 그로 하여금 중국을 “제2의 조국”이라고 공공연하게 발언하도록 만들었을까. 한 번 살펴 볼 일이다. 중국인의 친구 사귀기에 관한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1922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출생해 1941년 왕위에 올랐다가 1955년 그 왕위를 아버지에게 ‘거꾸로’ 양위한 뒤 거센 정치판에서 부침을 거듭했던 인물이다. 국내의 극우 정권이 일으킨 쿠데타에 밀려 베이징에서 장기간 해외 망명을 해야 했고, 극좌 정권인 폴포트(그는 캄보디아에서 대량으로 인명을 희생시킨 ‘킬링필드’의 주인공이다) 집권기에도 정치적 모험에 직면했다.

 

그의 이력이 새삼 궁금하지는 않다. 중국이 그에게 기울였던 정성이 더 돋보인다. 그는 마오쩌둥 시절부터 중국 정계의 최고 상객(上客)이었다. 베이징 망명 기간 내내 그에 대한 중국의 대우는 ‘최고 국빈급’이었다. 그의 사망과 함께 중국 언론에서 소개한 비화가 하나 있다. 1970년대 그가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신선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 위해 중국이 벌인 행동이다. 상하이 시는 현지의 특색 있는 요리인 ‘닭고기 탕’을 끓이려고 그가 도착하는 때에 맞춰 닭 108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도착 일정은 늦춰졌다. 그에 따라 다시 잡은 닭이 역시 100마리를 훌쩍 넘었단다. 그럼에도 결국 그가 닭고기 탕을 먹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신선한 닭의 피를 사용해야 했던 요리여서 고르고 고른 닭을 잡아야 했는데, 아무리 하찮은 생명이라고 해도 그만을 위해 닭 200여 마리를 잡았다면 보통 정성은 분명히 아니다.

 

중국인의 친구 사귀기는 은근하며 끈질기고, 오래 내다보며 먼 길을 함께 나가는 지향(志向)이 분명하다. 낭만적이며 호쾌하고, “한 번 해병대면 영원한 해병대”라며 웃통을 곧잘 벗어던지며, 망설임 없이 쉽게 한 데 어울리는 한반도 식의 친구 사귀기와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중국이 캄보디아 내에서의 정치적 위상을 회복할지 전혀 불투명한 상황 아래에서도 외국을 이리 저리 떠도는 망명객 시아누크를 국빈으로, 상객으로 모신 이유는 뭘까. 시아누크는 중국이 1970년대 내내 추진했던 제3세계 비동맹 외교의 한 축이었다. 미국과 옛 소련이 큰 세력을 분점해 이끌었던 냉전시대에 아프리카와 중동 및 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비동맹권 외교 진영에 중국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그 중의 하나인 캄보디아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결국 유랑객으로 전락하며 정치적 지위를 상실한 시아누크를 극진히 환대했다.

 

마오쩌둥 시대에 싹튼 우정은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까지 세대를 건너뛰는 와중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마침내 그는 요양 차 자신이 직접 언급한 “제 2의 조국”인 중국 베이징에서 체류하다가 15일 마침내 파란 많았던 일생을 접었다. 어떤 이는 “중국에는 친구라는 말이 없다” “한국처럼 혈육의 정을 나눈 듯한 친구란 중국에 없다”라고 말한다. 비교적 냉정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며, 뚜렷한 목적과 거래 의식 등이 담긴 교제(交際)만이 있을 뿐이라는 인상 때문에 나온 말이다. 꼭 그렇지는 않다. ‘친구’라는 대상을 생각하는 관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친구’는 한자로 ‘親舊’라고 표기한다. 우리 식 한자다. 중국에서는 “펑여우”라고 발음하며 ‘붕우(朋友)’라고 적는다. 그리고 먼저 덧붙이는데, ‘친구’라고 표기하든 ‘붕우’라고 적든 간에 최소한 ‘친구’의 개념에 관한 한 중국은 한국에 비해 훨씬 볼륨이 크다. 내용도 아주 깊다고 해도 좋다. 조금 어렵다고 여겨지겠지만, 전통의 중국이 선보인 수많은 ‘친구’ 관련 단어들을 밑에 소개한다.

 

* 나를 알아주는 친구, 또는 서로의 값어치를 알고 반겨주는 친구-지기(知己), 상지(相知), 상여(相與)

* 사귄 지 오래인 친구-고교(故交), 구교(舊交), 고구(故舊)

* 절친의 친구-지우(至友), 지교(至交)

* 마음이 잘 맞는 친구-집우(執友)

* 항상 뭔가 더 있어 보여서, 행동거지가 그 앞에 서면 어려운 친구-외우(畏友)

* 도움을 주는 친구-익우(益友)

* 손해를 끼치는 친구-손우(損友)

* 겉만 잘 맞지 마음에는 들지 않는 친구-면붕(面朋), 면우(面友)

* 나이 차이를 잊을 만큼 가까운 친구-망년교(忘年交)

* 우정이 돌과 나무처럼 단단한 친구-금석교(金石交), 석우(石友)

* 어려웠을 때 우정을 나눈 친구-포의교(布衣交) (‘포의’는 하찮은 옷감으로 지은 옷)

* 목을 걸고 상대를 지켜주는 친구-문경교(刎頸交)

 

사실 이보다 많다. 중국에서 최소한 ‘친구’라고 한다면 위에 적은 여러 가지의 개념이 다수 합쳐지는 경우가 많다. ‘친구’라는 대상을 이렇게 다양한 프리즘으로 분광(分光)과 분석(分析)의 절차를 통해 바라보고 있으니 사람을 사귀는 데도 다양한 안목이 있다는 얘기다. ‘한 번 해병대면 영원히 해병대’라는 식의 낭만과 호방함은 없을지 몰라도, 최소한 나와 남의 관계를 치밀하게 조율하며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인생자세는 엿볼 수 있다.

 

시아누크와 중국 역대 지도부 또한 마찬가지다. 1960년대 거센 바람을 일으켰던 제3세계 비동맹 외교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알아주는 친구인 지기(知己)로 시작한 둘 사이는 오랜 친구인 고교(故交)의 상태를 넘어 절친인 지우(至友)로 향했고, 서로 어려웠을 때를 회고하는 포의교(布衣交)에서 목숨까지 의탁하는 사이로 발전한 셈이다. 중국이 크고 성장한 측면은 경제적인 요소로만 따질 게 아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여러 위기를 헤쳐 갈 그런 지혜와 경륜이 중국의 문화 토양 안에는 제법 깊이 쌓여 있다. 다만 우리는 그를 읽지 못할 뿐인지 모른다.

 

▶ 유광종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베이징ㆍ타이페이 특파원, 중국연구소 부소장)

2012-10-15 16:3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