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강호, 그리고 무협…중국인은 무술이 필요했던가 보다

10월 22일 세상을 뜬 한 중국 노인이 대륙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 이름은 뤼쯔젠(呂紫劍), 향년 118세. 우선 100세를 훌쩍 넘긴 매우 드문 장수(長壽)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더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가 중국 최고의 무술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팔괘권(八卦拳)이라는 중국 무술의 최고 권위자였다. 궁금해서 그의 이력을 다시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곽원갑(霍元甲), 두심무(杜心武)와 함께 중국 3대 협객’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둘 중의 한 사람 곽원갑은 우리에게도 제법 익숙한 인물이다. 영화 <곽원갑>의 실제 주인공이니 그렇다. 쿵푸스타 리롄제(李連杰)가 주연한 영화 <곽원갑>은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 초반에 중국 톈진(天津)을 무대로 화려한 무술 실력을 뽐냈던 인물이다. 실제의 곽원갑은 1868년 출생한 인물로 영화의 내용과 비슷한 삶을 살다가 1910년 숨진 사람이다.

 

1869년 출생한 두심무 또한 마찬가지다. 비슷한 이력을 지녔고, 역시 무술계에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다. 뤼쯔젠은 이들과는 25년 정도 연하다. 1893년 태어났으니, 동년배 또는 또래의 인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毛澤東)이다. 곽원갑의 아들 뻘이기는 해도 뤼쯔젠의 명망은 꽤 높았던 모양이다.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무술을 익혀 이른바 ‘강호(江湖)’의 세계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니 말이다. 실제 그는 영화 <곽원갑>의 주인공처럼 강한 체력을 믿고 중국인을 깔보기 일쑤였던 외국의 주먹패들을 혼내줬던 일화를 남겼다.

 

그가 젊어서 활동했던 지역은 고향인 후베이(湖北)를 도도하게 흐르는 장강 유역이었다. 이곳에는 19세기 말에 들어서 외국의 배들이 항행을 시작했다. 내륙의 시장을 개척해 그곳으로 짐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었다. 문제는 외국의 배들이 규모에서, 그리고 성능에서 압도적이었다는 점이다. 외국의 커다란 배들은 당시의 중국 선적들이 따라잡기 힘든 속력으로 장강을 오갔다. 그들이 빠른 속도로 운행하면 큰 물결이 일어 몸집이 작은 중국 배들을 뒤흔들었다. 큰 물결에 중국 배들이 뒤집히기 다반사였고, 적지 않은 인명 피해도 낳곤 했다. 그래서 늘 분규가 잇따랐고 심지어는 외국 선원들과 중국 선원들의 몸싸움도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해결사로 등장한 사람이 뤼쯔젠이었다고 한다.

 

잦은 싸움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국 배의 소유자들이 결투를 신청했고, 그럴 때 앞에 나서서 서양인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중국의 전통 무예로 상대를 혼낸 사람이 바로 뤼쯔젠 노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톈진의 곽원갑, 관둥(關東)의 두심무와 함께 당대 중국의 3대 협객이라는 별칭이 따라 붙었다는 얘기다. 그는 무당파(武當派) 팔괘권의 전통적 계승자다. 당시에 꽤 높은 무술 실력으로 중국 강호세계에 이름을 드러냈으나, 어쩌면 그는 많은 무술 고수(高手)의 한 사람에 불과할지 모른다. 앞에서 예로 든 곽원갑, 두심무 외에 중국 전통 무술을 연마해 협객으로 이름을 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좌측부터) 곽원갑, 황비홍, 엽문, 쉬스여우, 뤼쯔젠의 생전 모습>

 

 

우선 우리에게 꽤 익숙한 사람이 또 있다. 황비홍(黃飛鴻)이다. 그는 1847년 출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향은 중국 대륙의 남단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이라는 곳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황비홍’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영화에 나오는 대로 고향인 포산에서 무술관과 약방을 운영했던 인물이다. 무예가 아주 출중해 당시 중국 남방의 대표적 무술인으로 이름을 드날렸다.

 

절세의 쿵푸 스타 이소룡의 스승은 엽문(葉問)이다. 그 역시 황비홍과 같은 동향인 포산 출신이다. 뤼쯔젠과 비슷한 연대에 태어나 홍콩으로 건너간 뒤 제자 이소룡에게 무술을 전수했다. 황비홍의 무술이 그에게 이어졌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엽문은 빠른 공격으로 유명한 영춘권(詠春拳)의 최고 실력자였다.

 

어디 그뿐일까. 지금의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는 왕오(王五)의 이름이 높았다. 큰 칼을 잘 써서 사람들은 그를 ‘대도(大刀) 왕오’로 불렀다. 중국 혁명을 이끈 공산당 군대 해방군에는 무술로 유명한 장군이 한 사람 있다. 쉬스여우(許世友)다. 허난(河南)의 빈촌에서 태어나 일찍이 무술로 이름을 떨치던 소림사(少林寺)에서 무술을 연마했다. 현대전에도 능했지만, 그는 소림사에서 갈고 닦은 무술 실력으로도 명성이 나 있다.

 

중국인에게는 뭔가가 숨겨져 있다. 우리가 읽으려고 하지 않았고, 결국 눈치가 없어 읽지도 못한 그런 비밀스런 면모 말이다. 118세로 타계한 무술계의 원로 뤼쯔젠을 계기로 이렇게 간단히 들춰봐도 중국에는 무술을 연마해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 정도로 무술의 고수들이 많다면 중국 무술계의 저변(底邊)은 얼마나 넓었겠는가. 무술로 자신을 보호할 스스로의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떤 절박감이 있지는 않았을까. 늘 사람을 해치려 달려드는 도적이 횡행했거나, 반란이 일어 피바람이 불어 닥쳤거나 하는 등의 환경이 있지 않고서는 그런 무술이 발달할 리는 없지 않은가.

 

뤼쯔젠이라는 초(超) 장수 노인의 죽음으로 우리는 슬쩍 그런 중국의 한 단면을 들춰볼 필요가 있다. “어허, 그 노인 참 오래 사셨구만” “노인이 무술까지 잘 하셨대…”라는 경탄으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무술의 고수가 많이 등장했다는 점, 중국은 무술을 연마하는 일이 일상적인 습성으로 자리 잡았을지 모른다는 점, 그래서 중국은 어쩌면 다툼과 경쟁을 넘어 피를 부르는 살벌한 싸움의 환경에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점…. 뤼쯔젠 노인의 타계를 통해 떠올려 본 ‘중국 생각’의 하나다.

 

 

유광종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베이징ㆍ타이페이 특파원, 중국연구소 부소장)

2012-10-24 17:2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