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떨어진 운동화, 해진 점퍼로도 가릴 수 없는 것

-중국 인기 총리 가족의 축재소식을 접하며-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

 

아마 7년쯤? 그리고 또 하나는 11년쯤? 우리가 2006년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행색을 살피며 감탄하며 추정하거나 그냥 옮긴 숫자다. 원자바오 총리가 운동화를 7년째 신고, 같은 점퍼를 11년째 입는다는 중국 언론의 보도를 접하면서다. 각종 재난현장에 나타나 구호활동을 지휘하다가 눈물을 흘려서 ‘눈물 총리’로도 불리는 원자바오다. 그의 인상은 아주 좋다. 정갈한 말솜씨에 차분한 정치적 행보, 남을 압도하지 않는 친숙한 이미지 등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운동화를 7년 동안 신으며 민심 챙기기에 나서고, 해진 점퍼를 11년째 그대로 입는다니, 그는 그야말로 보기 드문 청렴하며 유능한 재상 아닐런가?

 

그래서 한국 언론들은 들떴다. 중국 여러 매체들이 전하는 총리의 감동적인 면모를 여과 없이, 때로는 오히려 그들보다 더 흥분한 채로 전하기에 바빴다. 필자는 당시 한국의 같은 언론인으로서 원자바오 관련 보도를 열심히 지켜봤다. 속으로는 ‘이미지 선전용 과장 아닐까’, ‘통제가 쉬운 중국 언론의 속성 상 무엇인가 감춰져 있을 법한데…’라는 의문을 품었다. 적어도 이런 점은 생각해 봐야 했다. 중국에서 총리직을 수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중국 공산당 서열 3위인 총리는 국무원을 관장하지만, 당내의 실질적인 권력기반이 매우 약하다. 따라서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민생과 일반 현안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며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저우언라이(周恩來)다. 그는 강력하기 이를 데 없었던 최고 권력자 마오쩌둥(毛澤東) 밑에서 늘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그 대신 저우언라이는 외교 현장(미국과의 교섭이 대표적이다), 문혁 때의 발 빠른 처신, 온화한 이미지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마오쩌둥의 권력 밑에서 그가 제법 오래 장수하며 자신을 유지한 근간이다. 주룽지(朱鎔基)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백그라운드 없이 덜컥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장쩌민(江澤民) 밑에서 권력에 눈길을 주지 않고 경제개혁, 민생현안을 챙기면서 자신을 지켰다. 그로써 경제적으로는 화려한 업적을 쌓으며 장쩌민 집권 기간 내내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산당 권력 안에서 중국 총리라는 자리는 그런 모습이다. 당내 정치적 입지가 두텁지 않은 사람을 골라 총리를 맡기는 게 일반적이고, 그는 권력과는 상관없는 영역에서 자신의 힘을 쌓아야 한다. 당연히 국정 운영에 매진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를 기회있을 때마다 선전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원자바오의 ‘떨어진 운동화와 해진 점퍼’는 사실 그런 맥락에서 살폈어야 했다. 통제성이 강한 중국 언론이 전하는 정보를 여과 없이 그대로 전하는 일은 어리석다. 그러기에 앞서 중국의 권력 구조를 살펴야 하고, 그 특징 속에서 중국 소식에 대한 갈피를 잡아야 했다.

 

그런 원자바오 총리에게 매우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보도가 하나 나왔다. <뉴욕타임즈(NYT)>는 26일 원 총리 일가가 쌓은 재산을 면밀하게 추적한 기사를 실었다. 원 총리의 모친(90세), 그의 부인 및 친동생, 그리고 아들 등이 원 총리 재직 기간에 불린 재산의 면모를 따라 잡은 기사였다. 그 일가가 쌓은 재산은 어림잡아 27억 달러에 달한다는 게 보도의 결론이다. 세계적인 신문답게 NYT는 추측보다는 날카롭게 날을 세워 추적한 자료와 증언 등을 기사의 줄기로 삼았다. 따라서 설득력이 매우 높다. 그 보도에 따르면 원 총리 일가는 잘 나가는 국영기업 등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쌓은 재산을 다시 별장 단지 조성, 보석회사, 부동산 개발 등에 투자하면서 더 큰 부를 쌓았다.

 

그 과정에서 원 총리가 직접 개입한 흔적은 없다. 원래 보석에 손을 대 주변으로부터 말이 많았던 아내와는 이혼까지 생각했다는 내용의 증언도 실었다. 따라서 원 총리의 직접적인 부정축재 혐의는 지금 정황으로 볼 때는 없다. 그럼에도 이 보도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원 총리의 정치적 타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중국은 드러난 곳보다 가려진 곳이 많다. 특히 공산당이 지배하는 정치적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고 권력층의 선출 자체가 짙은 흑막에 가려져 있고, 의사결정 자체가 지독한 비밀주의에 싸여 있다. 따라서 중국 정치에 관한 현지 언론의 시각과 관점을 그대로 옮겨다 한국 언론에 소개하는 일은 삼가야 마땅하다. 그 속을 꿰뚫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축적이 먼저 선행해야 한다. 떨어진 운동화와 해진 점퍼에 관한 호들갑스러웠던 한국 언론의 보도를 새삼 되돌아본다. 이웃의 원자바오 총리라는 인물이 보이는 청렴성으로 한국 공직자들의 태도를 일갈(一喝)하려는 충정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근거가 희박하며, 모종의 의도가 분명히 존재할지도 몰랐던 중국 발(發) 정보를 그대로 옮긴 우(愚)는 반성해야 옳다.

 

어디 한국 언론만의 문제일까. 중국을 알고 살피려는 한국의 많은 이들도 이 점은 충분히 새겨야 옳다. 드러난 것보다 가려진 것이 많은 중국,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견고한 지식의 축적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광종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베이징ㆍ타이페이 특파원, 중국연구소 부소장)

2012-10-26 15: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