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공무원 부패, 한국과 중국의 동병상련(同病相憐)

먹어도 크게 먹는다? 먹으려면 제대로 먹는다? 먹고 나면 사정없이 튄다? 요즘 중국이나 한국이나 누군가가 ‘먹어 치우는’ 무엇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누구는 바로 공무원, 먹어 치우는 대상은 밥이 아니라 돈이다.

 

전편에서 적었듯이 지금 중국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축재(蓄財) 문제가 커다란 화제다. 그 일가족이 27억 달러(약 3조 원)을 먹어 치웠다는 뉴욕타임즈(NYT) 보도가 나온 뒤 중국 정부가 나서서 직접 이를 반박하는 성명까지 내보내는 등 이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 관리들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며 돈을 챙겨 먹는 일은 중국에서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아주 오랜 전통이 있다. 자리에서 그냥 돈을 챙기는 일은 올드 스타일이다. 미리 유학을 보낸 아들에게 유학비용을 보태도록 ‘업자’들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방식도 역시 올드 패션이다.

 

최근에는 ‘홀딱 벗은 공무원’이 화제다. 자식이나 아내 등 가족을 미리 해외로 보낸 뒤 홀가분하게 상황을 보며, 시간을 기다리다가, ‘한 건’ 걸렸다 싶으면 단단히 털어먹고 해외로 내뺀다는 유형의 공무원이다. 한자로 적으면 ‘나관(裸官)’이다. 그 작명(作名)이 흥미로워 이름 붙인 연유를 찾았으나 정확히 나오지는 않는다. 가족들을 미리 해외로 내보내 아무런 부담 없이 홀가분한 상태로 기회를 엿보다가 낚싯줄에 올라온 대어(大魚)를 움켜잡아 챙긴 뒤 해외로 튄다는 뜻에서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의미의 ‘나(裸)’라는 글자를 붙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예 ‘먹튀 공무원’을 일컫는 ‘도관(逃官)’이라는 존재도 있다. 홀딱 벗고 훌훌 말아 먹은 뒤 튀는 공무원에 비해 아무래도 수가 낮다. 우선 돈줄이 잡히면 부랴부랴 먹고 튀는 사람이니, 그 계획성이나 치밀성에 있어서는 ‘나관’에 비해 뒤져도 한참 뒤진다. 그러나 훌떡 벗어젖힌 채 해외로 튀는 사람이나, 기다렸다가 먹은 뒤에 바로 튀는 사람이나 매 한 가지다.

 

이들에 의해 생긴 피해 액수는 얼마일까. 천문학적이다. 제대로 공표한 숫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추정치로는 50억 위안(약 1조 원)에서 많게는 2.000억 위안(약 40조 원)에 이른다. 아무리 방대한 중국이라지만, 이 정도 액수가 부패한 공무원들에 의해 해외로 나간다는 점은 정말이지 큰 문제다.

 

한국도 역시 비슷하게 몸살을 앓는 중이다. 여수의 공무원이 8억 원을 해먹은 사건 말이다. 몇 년 동안 경리 부서를 담당하면서 은근슬쩍 빼돌린 돈의 액수가 장난이 아니다. 전자결제를 도입해 투명하게 자금의 결제 과정을 관리했다고 자신했지만 곳간에 든 도둑은 역시 한 수 위였다. 그 약점을 이리 저리 간파해 2~3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돈을 빼돌렸다. 액수가 중국에 비해 보잘 것이 없어서 안심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독에 간 금이 한 줄, 두 줄 더 생기면 그 항아리 깨지는 데에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법이다. 가랑비에 옷이 홀딱 젖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탐관오리(貪官汚吏)라는 성어는 괜히 생기지 않았다. 제가 맡은 공무보다는 돈 먹기에 급급한 사람이 탐관, 자질구레한 업무에 제 권력을 실어 백성 괴롭히며 치부하는 사람들이 오리다. 탐욕스럽고 더럽다는 뜻의 ‘탐오(貪汚)’라는 단어와 왕조 시대 공직으로 있었던 사람들을 일컫는 ‘관리(官吏)’가 서로 어울려 생긴 말이다.

 

관직에 있는 사람, 공무원에 관한 한자 호칭은 꽤 많다. 그 관련 단어도 적지 않다. 공직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만큼 민생(民生)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련 한자 단어들을 간추려 보자.

 

* 공직자의 뜻이 담긴 한자: 관(官), 리(吏), 재(宰), 료(僚), 서(胥), 사(仕), 환(宦)

* 합성어: 관리, 관료(官僚), 재상(宰相 벼슬아치의 우두머리라는 뜻), 서리(胥吏 아전 등의 하급 관리), 동료(同僚 같은 관직에 있는 사람), 환로(宦路 벼슬길), 환관(宦官 내시)

 

일 잘하는 관리의 자리 올려주는 한자가 승(昇)이고 진(進)으로, 우리는 이를 합쳐서 승진(昇進)이라 부른다. ‘옮기다’는 뜻의 천(遷)도 마찬가지 의미인데, 왼쪽을 좋지 않게 본 옛 습관에 따라 그 쪽으로 옮기는 좌천(左遷)일 경우 반대의 뜻을 지닌다. 잘못을 범한 관리에게 내려지는 게 삭(削)이다. ‘빼앗는다’는 뜻의 탈(奪)이라는 글자를 합쳐 우리는 ‘삭탈관직(削奪官職)’으로 불렀다. ‘끝낸다’의 파(罷)와 ‘면하다’의 면(免) 또한 탐관오리를 혼내는 방법이다. 둘을 합쳐 나온 단어가 ‘파면’이다.

 

이렇게 복잡한 단어들이 다 공직자와 관련이 있다. 나라 운영의 근간인 이들의 행위를 제대로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그런 점에서 고민이 깊다. 자리의 권력을 활용해 제 배를 불리는 공직자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유광종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베이징ㆍ타이페이 특파원, 중국연구소 부소장)

2012-10-31 09:5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