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부정부패(不正腐敗)를 누르는 중국 전통의 빛

제 고향의 정서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어릴 적 맡은 흙냄새, 뛰놀던 냇가, 저녁밥 지어놓고 문 밖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니…. 세파에 시달리다가도 문득 떠올린 고향의 이미지에는 그런 아름다움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사람은 늘 고향을 기억하며 마음 속 본래(本來)의 맑음을 되새기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고향을 찾지 않는 중국 고위 지도자들이 있다. 발길을 가능한 한 돌리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이다. 고향이 그립지 않아서가 아니다. 고향은 그리운데, 자신이 그곳을 찾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해서다.

 

우선 덩샤오핑(鄧小平)이 그랬다. 그는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이름 난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다. 중국을 닫힌 사회주의 국가에서 열린 현대 국가로 전환시킨 이 조그만 몸집의 사내는 그 이름을 만방(萬邦)에 떨치고서도 결코 고향 쓰촨(四川) 광안(廣安을) 찾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이 그의 방문을 기대하고 또 기대했지만 끝내 덩샤오핑은 1997년 숨을 거둘 때까지 광안을 방문하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이 그의 방문을 통해 뭔가 일을 벌이지 않을까, 그를 환영하기 위해 쓸데없이 예산을 낭비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뭐 잘난 인물이기나 한가’ 등의 생각 때문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생전 모습>

 

덩샤오핑은 13억 중국을 오늘날의 기반 위에 올려 세운 사람이다. 그 업적의 휘황함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에 따르는 부정적인 풍문(風聞)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현대 중국의 발전사에서 덩샤오핑 이름 세 자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인들은 그를 ‘위인(偉人)’으로까지 추켜세운다. 그럼에도 그는 노년에 고향을 찾지 않았다.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의 금도(襟度)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중국 광안의 덩샤오핑(鄧小平) 생가와 심천의 덩샤오핑(鄧小平) 동상>

중앙일보 조용철 기자 제공

 

또 한 사람 눈에 띄는 이가 있다. 1990년대 중국 경제개혁을 이끌었던 ‘철혈(鐵血)의 재상’ 주룽지(朱鎔基)다. 그가 어릴 적 자랐던 고향은 후난(湖南) 창사(長沙)다. 그 역시 고향을 찾지 않았다. 고향을 찾을 경우 전국을 이끌던 ‘체급(體級)’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울러 고향 사람들이 ‘창사 사람 주룽지’라는 이미지를 활용해 무슨 일을 꾸미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늘 경계했다.

 

<젊은 시절의 주룽지(朱鎔基)>

tt.mop.com

 

주룽지는 덩샤오핑의 명망에 비견할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 역시 중국 발전사에서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뛰어난 지도자다. 그는 총리로서 중국을 이끄는 동안 여러 명언(名言)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깨끗한 공직자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말한 대목은 제법 심금을 울린다. 그는 이런 옛 말을 인용했다. 그가 중국 경제개혁을 이끌며 공무원의 부정과 비리에 정면으로 맞섰던 ‘철혈의 총리(總理)’였다는 점을 새기며 이 글을 음미해 보자.

 

“관리들은 나의 위엄을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내 청렴함을 두려워한다. 백성들은 내 능력을 높이 사는 게 아니다, 내가 공직자로서 올곧게 지닌 자세에 감복할 뿐이다. 내가 깨끗하면 관리들은 긴장해 태만할 수 없으며, 내가 공정하면 백성들은 거짓을 행할 수 없다. 밝음은 공정함에서, 위엄은 청렴에서 나오는 법이다.”

 

아주 울림이 큰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아래에 원문을 함께 소개한다.

 

吏不畏吾嚴, 而畏吾廉,民不服吾能, 而服吾公. 廉則吏不敢慢,公則民不敢欺. 公生明,廉生威.”

 

주룽지가 만든 말은 아니다. 명(明)나라 곽윤례(郭允禮)라는 사람이 남긴 『관잠(官箴)』이라는 책 속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공직자에게 남기는 일종의 잠언(箴言) 모음이다.

 

 

<주룽지(朱鎔基)의 기자회견을 정리한 책의 표지와 국내외 기자회견 때의 모습>

 

우리는 여기서 잠시 숨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중국은 지금 공무원 부패로 한창 떠들썩하다. 원자바오 총리의 가족 축재 문제, 해외로 재산을 빼내 도망치는 관료, 돈 챙기려 정신을 못 차리는 지역 공무원의 문제로 편한 날이 없을 정도다. 그래도 중국은 굴러간다. 그냥 굴러가는 정도가 아니라 국력은 나날이 태평양, 대서양, 우주공간으로 뻗어 이제는 미국이 그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돈만 밝혀 백성들에게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펼치는 철면피(鐵面皮)한 공무원만 있다면 그런 중국이 어떻게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공무원보다 그렇지 않은 공무원도 제법 수가 많고, 특히 권력의 정점을 이루는 지도자급에서는 스스로 고향조차 찾지 않는 소신과 원칙의 인물들이 자리를 잡고 국가의 근간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지도자의 철학을 이루는 것은 위에 인용한 『관잠』과 같은 사색(思索)과 모색(摸索)이다. 공자(孔子)를 필두로 의로움과 공정함으로 세상에 나서고자 한 중국의 철학적 모색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 전통의 깊이가 우리에겐 왜 없을까. 사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어져 온 이러한 전통은 결코 적지 않다. 단지 우리가 그를 활용하여 오늘에 이끌어 들이지 못할 뿐이다. 부정과 부패의 얼룩이 좀체 가시지 않는 중국을 향해 우리가 조소(嘲笑)만 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중국식 부정부패는 남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다. 게다가 오늘의 부정(不正)함을 옛 거울에 비춰 스스로를 바로잡는 지혜의 전통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우리 아닌가.

 

 

 유광종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베이징ㆍ타이페이 특파원, 중국연구소 부소장)



2012-11-02 09: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