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중국 여권에 담긴 이상한 민족주의

차기 공산당 총서기로 뽑힌 시진핑이 지난 11월 15일 18차 당 대회 뒤 모습을 처음 드러낸 자리에서 먼저 올린 일성(一聲)은 ‘중화민족의 부흥’이었다. 1953년 출생한 시진핑은 전임자 후진타오(1942년생)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다. 후진타오에 비해 개혁개방의 신선한 기운을 더 많이 향수했던 세대다. 그래서 좀 더 차원이 높은 혁신과 창의를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취임하면서 꺼낸 첫 마디는 자국의 민족 부흥이었다.

 

‘민족 중흥’이나, ‘민족 부흥’이나 다 마찬가지다. 우리도 한때 이 단어들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다. 다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서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조선에 이어 일본 강점기, 북한과의 전쟁을 겪은 한국에 있어서 이 민족의 중흥은 아주 절실한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흘러간 세월에 떠내려 보낸 정치적 구호이기도 하다. 그 사명감을 아주 잊자는 게 아니고 좀 더 큰 차원, 지구촌의 입장에서 민족의 발전을 조화롭게 모색하자는 얘기다. 그에 비해 중국의 민족주의는 어딘가 낯설고 의심쩍다.

 

청나라 말에 제국주의 열강에 짓밟혔다는 민족적 울분이 그 전제인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좀 과장이며 억지스럽기도 하다. 적어도 중국은 동북아시아, 나아가 유럽까지 포함한 지구촌의 성장 역사에서 세계 최강의 자리를 늘 지켜왔기 때문이다. 한때 잠시 비틀거리다가 새로 힘을 키운 ‘조그만 제국’ 몇 나라한테 뺨 몇 대 맞은 정도의 치욕을 두고 민족의 굴욕이라며 엉엉 울어대는 모습까지 연출하는 게 어딘가 석연치 않다.

 

드디어 사고까지 쳤다. 중국 외교부는 새 여권을 발행하면서 남중국해의 전역을 중국 해역으로 명시하는 ‘야욕(野慾)’을 드러냈다. 대만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대만의 명승지를 그 여권에 표기함으로써 ‘너희는 자동으로 내 것’이라는 호기를 과시했다. 중국 외교부는 전략의 정교함으로 유명한 곳이다. 중국 대외전략의 핵심이니까, 그 대국의 지위에 걸맞은 전략을 큰 차원서부터 세밀한 구석까지 차분하게 세워 추진하는 곳이다. 그런 중국 외교부가 새 여권에 남들이 전혀 인정하지 않는 영역을 “전부 우리 것”이라며 표기를 강행한 것이다. 배짱이라고 보이는데, 커다란 덩치에 비해 어딘가는 속이 여물지 못한 비만 아동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남중국해를 영해로 두고 있는 필리핀과 베트남이 우선 극심한 반발을 일으켰고,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는 일본은 ‘이 사람들 정말 엉터리네’라며 비웃고 있다. 대만도 ‘이 친구들 정말 너무 나가는데’라며 짜증을 낸다. 미국은 “개입할 생각 없다”라며 지역 당사국들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중국의 이런 행위가 왜 어떻게 빚어졌는지 궁금하다는 입장이다. 조그만 조짐으로 보인다. 전략 판을 잘 짜는 중국의 외교부마저 분쟁의 여지가 많은 남중국해 등을 중국의 영토와 영해로 표시해버리는 ‘충동적 민족주의’ 논리에 빠져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새로 등장한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서열 1위 시진핑이 첫 연설에서 주창한 중화민족의 부흥이 결국 어떤 성분의 정치적 구호인지 심각하게 따져보는 사람도 생겼다.

 

중국 내부의 문제는 제법 많다. 개혁개방이 30여 년 이어지면서 빈부격차의 심화, 관료부패의 만연 등에 따른 사회 불만이 아주 높다. 이런 시점에 중국 지도부는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그 지향이 제법 의심스러운 정치적 구호를 선보이고, 차분했던 중국 외교부는 그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민족적 정서의 물결을 타고 내부에 쌓인 여러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심산으로 비친다.

 

새로 띄운 항공모함에서 젠-15 전투기를 이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중국의 최근 움직임이 가슴 한쪽을 서늘케 하는 소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2-11-30 11:4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