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글 꼬투리-‘외유(外遊)’를 위한 변명

요즘 큰 화제가 국회의원들의 외유다. 바깥 ‘외(外)’에 논다는 새김의 ‘유(遊)’라는 두 글자를 붙여 만든 단어가 외유인데, 일본식 한자 조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쓰여 우리말로 변한 한자 단어다. 이 외유는 그대로 풀기만 하면 ‘바깥에 나가서 논다’는 의미를 얻는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일차적인 새김에만 의존하면 이 단어는 ‘제 본업은 챙기지 않고 밖으로만 떠돌면서 놀러 다닌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국회 예결위 의원들이 여야 할 것 없이 급하게 예산안을 마무리한 뒤 해외로 ‘튀어’ 놀러 다녔다는 의심 때문에 여론이 비등한다. 그러나 한 호텔 방에서 각 지역구 의원들로부터 전해진 예산 청탁의 쪽지 4,000여 건을 받은 뒤 이를 예산에 반영해 준 예결위 의원들의 행태가 문제의 본질이다. 그 뒤에 벌어진 이들의 ‘외유’는 다른 말로 대체해 비판하는 게 옳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외유’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일차적인 거부감 때문에 밀실에서의 예산 담합과 해외여행을 한데 섞어 비난하다 보면 이들이 저지른 행태를 제대로 비판할 수 없겠다는 우려 때문이다. ‘외유’라는 단어가 원래는 그리 나쁜 뜻이 아닌데도 새김에 관한 옳은 해석을 결여해 부정적인 단어로만 사용하는 것은 우리 국어에 관한 일종의 결례일 수 있다.

 

우선 1월 8일자 <중앙일보> 간판사설을 보자. ‘의원외유 심사를 외부 손에 맡기자’라는 제목의 사설은 이번 사태가 빚어진 문제와 그 대책을 논의해 보자는 내용으로 짜여졌다. 분별없는 의원들의 해외여행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대안 제시도 돋보였다. 그러나 ‘외유’라는 단어가 지닌 참뜻과 파생적인 뜻을 헛갈렸다. 사설 뒷부분에는 아예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이런 나라에서 ‘의원 외유’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는 자체가 국회의 수치다”라는 지적 말이다. 중간 부분에서는 “의원의 국비 해외여행이 외유로 불리는 건”이라고 했다. 외유의 파생적인 의미를 잘 짚은 부분이다. 그러나 결론 부분에서 “‘의원 외유’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는 자체가…”라면서 격앙하고 있다. 이는 ‘외유’의 파생적 의미를 넘어서, 그 자체가 수치를 불러일으키는 말임을 암시하고 있다. 외유라는 단어의 본뜻과 파생적 의미를 혼동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현상이다.

 

대학시절 군사시설에 입소해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의 틀에서 행해지던 ‘교련’의 일환이었다. 일주일 동안 군 부대에 들어가 훈련하면서 유격장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유격(遊擊)’이라는 단어에 관해 설명하던 교관의 말이 귀를 자극했다. 그의 말인즉슨 이렇다.

 

“유격이라는 말에 왜 ‘놀다’라는 뜻의 ‘유’라는 한자가 들어가겠어요? 맞습니다. 유격은 놀면서 공격하는 겁니다….”

 

나는 아주 의아했다. 이상한 군대도 다 있다. 어떻게 놀면서 전쟁을 하나. 뭔가 잘못 설명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이 줄을 이었다. 우리 한

자 사전에는 이 ‘유’라는 글자가 ‘놀다’라는 으뜸 새김으로 나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새김은 아주 작은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놀다’라는 새김이 다른 의미를 지나치게 압도하는 측면이 있다. 그 말고도 본원적 새김, 다른 중요한 의미도 많은데 ‘놀다’라는 뜻으로 단순화한 경향이 있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든다.

 

이 한자는 ‘놀다’라는 새김에 앞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즉 한군데에 계속 머물지 않고 움직이는 행위를 가리킨다. 풀을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며 가축을 키우는 행위가 유목(遊牧)이고, 제 고향을 떠나 타지에 임시로 가서 배우는 행위를 유학(遊學)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길거리를 여기저기 오가는 행위가 유행(遊行)이고, 그 뒤에 시위(示威)를 붙이면 ‘길거리 데모’라는 의미를 획득한다. 집 떠나 멀리 떠도는 탕자(蕩子)를 다른 말로 유자(遊子)라고 적기도 한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이라는 시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명작이다. 따라서 이 글자는 정해진 곳 없이 먼 땅을 다니는 행위, 나아가 고정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동(流動)의 의미를 얻는다. 이런 새김을 충분히 알면 유격이 ‘고정적인 방식을 피해 틈새를 활용하는 공격방식’이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놀면서 하는 공격’이라는 기상천외의 군사전술이 있기는 있겠지만, 최소한 유격은 그런 종류의 개념이 아니다.

 

‘의원 외유’도 마찬가지다. ‘국비 해외여행’식으로 정확하게 말뜻을 전하거나, 야유를 섞어 ‘꽃놀이 판 해외여행’식으로 분명하게 어의(語義)를 살려 비판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저 그 전체를 ‘외유’라고 적으면 ‘밖으로 나가는 행위’ 모두를 겨냥하는 셈이고, 그러다가 결국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우리말과 글 속에서 뚜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한자어는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그 한자어는 우리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메이저급 신문의 간판사설에서 ‘외유’가 본뜻과 파생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면서 등장하는 현상을 보면 그런 느낌은 더 깊어진다.

2013-01-09 10:3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