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중국식 천인합일(天人合一)

 

 

위에서 보는 사진처럼 지금 중국은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다소 따뜻해진 날씨로 대기 중의 수분이 증가하면서 미세먼지가 그곳에 엉켜 벌어지는 일종의 스모그 현상이 베이징과 북부 지역 대도시를 뒤덮고 있다. 중국인들은 심각한 안개와 스모그를 보면서 “진정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뤘다”고 한탄한다.

 

천인합일은 중국 전통사상의 맥락에서 거의 으뜸을 차지하는 항목이다. 하늘과 사람을 별개로 파악하지 않고, 서로 상응(相應)하는 존재로 파악하는 사유다. 따라서 하늘과 땅, 천지(天地)와 사람(人)은 서로 상응하며 상생(相生)한다고 믿는다. 천지자연의 우주적인 질서 속에서 사람의 행위와 사유 또한 결코 그를 비켜가지 않는다고도 본다.

 

신문사에 있었을 때 중국 관련 칼럼을 쓰다 보면 가끔 독자들의 항의를 받는다. 특히 중국의 환경오염을 사람이 일으키는 인재(人災)적인 속성, 그런 문화바탕에서 벌어진다고 썼을 때다. 그런 경우 항의하는 독자들은 대개가 “중국의 전통사상이 천인합일을 주요 맥락으로 하고 있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야단친다. 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중국의 전통적 사유가 철학의 체계로 발전할 때 그 토대는 ‘천인합일’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을 관념적 철학의 세계로만 파악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자주 찾아온다. 중국 땅에 발을 딛고 중국인들과 함께 생활해 본 사람들은 더 그렇다.

 

관념적 세계의 중국과 실제 그를 연용(沿用)하며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낸 생활 속 중국인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공자(孔子)와 노자(老子)의 유현(幽玄)한 철학적 사유만을 두고 중국을 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천인합일’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현상을 살펴본다면 무엇을 목격할 수 있을까. 개혁개방을 서두르다 맞이한 중국의 오늘 날 환경오염은 단연 대표적 사례다. 수질오염이 지나쳐 촌락 자체가 어둡고 음침한 ‘발암(發癌) 마을’로 전락한 경우도 있고, 드넓은 호수가 녹조(綠藻) 현상 때문에 거대한 푸른 늪으로 변한 경우도 있다.

 

사람이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장면은 중국에서 어떤 맥락을 형성하고 있음도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중국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적들을 아래에 옮긴다.

 

 

 

위 그림과 사진은 어린 여자아이 발을 천으로 칭칭 동여매 자라지 못하도록 만든 전족(纏足)을 보여준다. 중국 당나라 또는 송나라에서 시작해 청나라 때까지 약 1000년 정도 중국 여인들의 발을 묶었던 흔적이다. 작은 연꽃 모양으로 변한 여인의 기이한 발 모양새를 두고 색욕(色慾)의 군침을 삼켰던 지난 1000년 동안의 중국 남성들은 천인합일의 어떤 구현자들일까.

 

 

청나라 말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서태후 주변의 내시들(위)과 외국 유명 사진잡지가 촬영했던 청나라 왕조 패망 뒤 함께 몰락했던 내시(아래)의 모습이다. 남성의 성기를 자른, 이른바 ‘거세(去勢)’한 남성들이 내시, 환관(宦官), 태감(太監, 환관을 부문별로 총괄하는 높은 직위)이다.

 

거세한 남성이 특히 역사 무대에서 가장 활개를 쳤던 곳이 중국이다. 조선에도 있었으나, 그들을 거세해 궁중의 중성인(中性人)으로 활용한 경험은 중국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환관을 가장 많이 ‘만들어’ 활용한 곳이다. 실제 거세한 남성의 ‘흔적’을 보여주는 사진도 많지만 끔찍하다싶어 싣지 않기로 한다.

 

다음 사진도 눈여겨보시라. 우리 어항 속에서 입을 뻐끔거리며 먹이를 달라는 금붕어다. 이 또한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점을 상기하자. 툭눈이, 캘리코, 붉은 호랑이 머리…. 정상적인 붕어를 기형(畸形)으로 만들어 사람이 관상(觀賞)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눈이 튀어나온 금붕어, 비늘을 벗기고 벗겨 결국 탈색(脫色)으로 유도한 금붕어, 옆으로 튀어나온 눈을 다시 위로 올린 금붕어, 혹을 덧붙여 사자머리처럼 만든 금붕어 등 종류도 많다. 일본에서도 발달했으나, 그 원조는 중국이다. 송나라 때 궁중 관상용으로 키우던 금붕어 산업이 민간 전반에 확산하면서 더욱 큰 발전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폄하코자 꺼낸 이야기는 아니다. 중국을 보는 관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대개 대륙과 연륙(連陸)해 오래전부터 ‘한자(漢字) 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면서 지내온 한반도 사람들은 중국이 한자로 남긴 여러 흔적을 통해 오늘의 중국을 보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연의』,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공자와 노자 등이 남긴 문자 축적(蓄積)을 들추며 중국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면 중국인이 실제 현실의 삶을 통해 남긴 여러 모습을 간과하기 십상이다.

 

문자가 남긴 축적도 중요하지만, 실제 중국인의 삶이 남긴 흔적도 매우 중요하다. 둘을 균형감 있게 다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천인합일’의 전통적 사유관념 뒤에 가려진 중국의 실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G2시대, 세계의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속내를 궁극적으로 알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황제와 그 주변의 권력까지 포함한 사람의 욕망, 특히 현세적인 가치에 대한 집착으로 중국이 빚어낸 ‘비(非) 자연적’, ‘자연 역행적’인 현상은 더 있으리라. 그러나 멀리 갈 것은 없다.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맨 여인의 전족, 출세를 위해 제 성기를 거세했던 환관의 그림자, 사람의 눈을 만족시키기 위해 신체의 변형을 감수해야 했던 수많은 금붕어의 노고를 살피면 우리는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생각해 볼 점도 있다. 우리는 그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옆에 살고 있는 중국인의 이야기에만 해당할까.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산하(山河)의 부담을 줄이고자 제대로 노력하는 중일까. 미세먼지 농도가 세계 최고에 달한다는 2013년 베이징 스모그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2013-01-15 14:5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