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최장수 주중 대사의 오만과 편견

김하중 전 주중대사, 그리고 전 통일부 장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제법 많을 것이다. DJ 정부에서 노무현 참여정부 6년 5개월에 걸쳐 중국 주재 대사를 역임했고, 그 뒤 통일부 장관도 맡았다. 그래서 그를 ‘최고의 중국통’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

 

요즘에는 중국 최고 권력자로 등장한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만큼 김하중 전 대사의 이력은 매우 화려하다. 그러나 그 이름이 조금의 눈부심을 담고 있는 만큼 그늘도 있다. 김 전 대사 본인에게 따르는 비의(非議) 또한 만만찮다는 얘기다. 그런 내용이야 시비의 다툼 소지가 있어 함부로 글로 올릴 수 없으나, 최근 <중앙일보>에 실린 그의 인터뷰를 보고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오만할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중앙일보> 1월 29일자 30면의 김 대사 인터뷰 기사 제목은 “다들 중국 얘기해도 진짜 중국 잘 몰라”다. 그럴 수 있다. 다들 중국을 말하지만 진짜 중국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제목 아래의 기사를 훑어 봤다.

 

“중국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중국에서 정책 결정자를 제대로 만나본 사람이 없어 진짜 중국이 뭔지 잘 몰라요.”

 

기사 내용이 그의 발언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요체는 이 한 마디에 모두 몰려 있는 듯하다. 역사학이나 정치학,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 중국을 다루는 학자들이 일단 열을 받겠다. 나름대로 전문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지식 쌓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여러 사람들도 마음이 편치 않겠다. 김 전 대사가 펼치는 논리는 이렇다. 중국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공산당 또는 국무원 관리들을 만나지 않고서는 중국을 알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 말은 어느 정도 맞다. 정책결정자의 면면을 제대로 알면 중국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사가 이야기하는 중국은 아주 일부분이다. 공산당의 집권은 이제 겨우 60년을 조금 넘어섰고, 김 대사가 접촉한 정책결정자는 그가 재임한 6년여 동안의 중국 정책결정자다. 그나마 최고 정책결정그룹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고, 외교부 차관급 정도의 인물이 대다수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등도 접촉을 했겠으나, 의전적인 자리에서 그냥 몇 마디 인사 나눈 정도에 불과하다. 시진핑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전해지기는 하나, 시진핑이 “나는 정말 김 대사를 형이라고 부릅니다”라고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 진위를 판단하기 힘들다. 김 대사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를 이해하고 연구한 한국 학자들은 많다. 마오쩌둥의 전략과 정치적 술수에 대해 연구하면서 김 대사보다 훨씬 깊은 중국 인식에 도달한 전문가도 많다. 경제적 관찰에서 중국의 역동적인 경제현상을 날카롭게 추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덩샤오핑을 훨씬 앞질러 간 부지기수의 중국 사상가들을 연구하는 국내 전문가들도 많다.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소동파(蘇東坡)를 연구하면서 중국인의 문학적 감성이 현실세계와 어떤 어울림을 만들어 내는지 관찰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이들이 각자 쌓은 높은 전문적 영역에 김하중 대사가 주장하는 현실 정치의 경험을 싣는다면 더 좋은 효과가 나오겠다. 그렇지만 “다들 중국 얘기를 해도 진짜 중국 잘 몰라”라는 말은 곤란하다. 김 전 대사의 인식, 중국에 대한 지식이 오히려 통시적이지 못하고 제한적인 경험에 의한 유추 정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겉으로는 탁월한 중국통이다. 그러나 그의 재임 6년 동안 빚어진 현상을 보면 김 대사와 중국 정부 사이의 소통 채널이 막히면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즉 김 대사의 중국 정보 독점으로 인해 주 베이징 대사관의 다른 기능이 오히려 제대로 가동을 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중국을 공산당이 이끈다고 해서 중국 관리들이 중국 이야기를 독점할 수 없는 법이다. ‘중국 공산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끈다’는 식의 사고에는 의식 있는 중국인 상당수가 거부감을 표시한다. 그럼에도 ‘그들을 알아야만 중국을 알 수 있다’고 중국인 아닌 한국인이 주장하고 있으니 중국 공산당에 비해 더 관(官) 본위(本位)주의적인 사고다.

 

이제 김하중 전 대사는 그 오만함과 편견을 거두는 게 좋겠다. 중국 관리 몇 명을 안다고 해서 4000년 이상 수를 셀 수 없는 중국의 억조창생(億兆蒼生)이 쌓고 거둔 중국의 빛과 그늘을 모두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서로의 지식과 체험을 공유하면서 차분하고도 치밀하게 그림을 그려가야만 중국이라는 거대 실체가 제대로 우리 뇌리에 들어올 수 있다.

 

강한 종교적인 취향이 때로는 공적인 업무를 침범한다는 지적을 들었던 김하중 대사다. 종교적 편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에 대한 앎의 깊이를 위해 자신보다 훨씬 진지하게 노력해 온 국내의 적지 않은 전문가들에게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앎은 겸손함을 통해 쌓인다는 말, 우리가 귀 아플 정도로 들은 내용이다. 김하중 전 대사가 믿고 따르는 그 종교의 교리에서도 그런 가르침은 충만할 텐데…….                

2013-01-29 13:5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