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압구정과 한명회, 그리고 성형(成形)

서울 강남구 압구정(狎鷗亭)은 조선 세조~성종 때의 권신 한명회(韓明澮)가 지은 정자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地名)이다. 친하게 지낸다는 ‘압(狎)’이라는 글자와 갈매기를 뜻하는 ‘구(鷗)’, 정자를 뜻하는 ‘정(亭)’이 어울렸다. 한명회와 압구정에 관한 내용은 제법 잘 알려져 있다. 세조를 도와 쿠데타를 성공으로 이끈 한명회가 인생 말년에 한강에서 경치 좋기로 이름 난 지금의 압구정동 자리에 정자를 지어 자연을 벗 삼아 생활했다는 내용이다.

   

이 압구정과 관련해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한자 성어가 있다. ‘구조망기(鷗鳥忘機)’ 또는 ‘해조망기(海鳥忘機)’다. 앞의 ‘구조’나 뒤의 ‘해조’는 모두 갈매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열자(列子)』에 등장하는 일화 속 갈매기가 그 주인공이다.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했을 법한 젊은 사내가 있었다. 마음이 순박했음인지 그는 갈매기와 매우 친했다. 사람과 사이를 가까이 하지 않는 갈매기는 유독 이 사내가 바닷가에 나타나면 몰려들어 함께 놀았다고 한다. 그러자 어느 날 그 아버지가 주문을 하나 냈다. “그중에서 한 마리를 잡아와 내가 한 번 데리고 놀아보자”라는 내용이었다. 사내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럼 한 마리 잡아 오겠습니다’라고 마음먹었던 모양이다. 가슴에 그런 뜻을 품고 바닷가에 나간 젊은 사내에게 갈매기는 다가오지 않았다. 자신들을 속여 내려앉게 한 뒤 잡아들이겠다는 사내의 의중을 간파했다는 얘기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부탁을 가슴에 담은 상태, 젊은 사내의 그 마음을 한자로 표현하면 ‘기심(機心)’이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상대를 속이는 마음 상태다. 순수한 마음과는 다른, 어딘가 작위적이며 무엇인가를 꾸며 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마음이다. 사내는 갈매기들이 그런 의도를 지닌 사람에게는 내려앉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자연과 벗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되찾아 갈매기들에게 다가갔고, 갈매기들 또한 그런 마음가짐을 되찾은 젊은이에게 다시 내려앉았다는 스토리다. ‘구조망기’ ‘해조망기’의 성어는 그런 어우러짐을 말하는 내용이다.

   

한명회가 사용한 압구정의 ‘압구’는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 『열자』라는 책이 소개한 스토리는 결국 ‘자연과 벗하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라는 의미의 ‘압구’라는 단어를 낳았다. 그러나 조선 500년 역사의 손꼽히는 권모(權謀)의 소유자였던 한명회에게 그 ‘압구’라는 단어가 어울릴까. 그는 세조에 이어 예종, 성종 때에 이르기까지 늘 권력을 탐했던 인물로 나온다. 그가 지은 유명 정자 압구정 또한 그 이름과는 달리 권력 일선에서 물러난 척하지만, 언젠가는 또 최고 권력을 꿰차고 싶어 했던 한명회의 마음을 가리는 장막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로부터 약 600년이 지난 현재의 대한민국 서울 강남구 압구정은 어떤 풍경일까. 우선 눈에 띄는 게 수를 정확하게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성형외과(成形外科)다. 이 ‘성형’이라는 말에 주목해 보자. 중국에서는 성형을 ‘얼굴 고친다’는 뜻의 ‘정용(整容)’이라는 단어로 적는다. 일본에서는 ‘형태를 고친다’는 ‘정형(整形)’이라는 말을 쓴다.

   

우리 식의 표현인 ‘성형’에는 경제학의 개념인 ‘인플레이션’의 요소가 적지 않게 담겨 있다. 원래 제 모습을 불완전한 상태로 간주한 뒤 수술을 거치면 제 모습(形)을 이룬다(成)는 의미다. 자연스런 상태의 얼굴을 고친다는 점에 조금의 주저함도 지니지 말라는 일종의 ‘권유’도 담겨있다. 사고 등을 당해 얼굴이 망가진 사람의 모습을 고쳐주는 일이야 얼마든지 ‘성형’으로 적을 수 있으나, 원래 타고 태어난 모습을 이리저리 뜯고 고쳐 겉으로만 예쁘게 다듬는 일을 어찌 ‘모습을 완성한다’는 의미의 성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거짓의 욕망이 거품처럼 잔뜩 끼어 있는 단어일 수 있다.

   

이 성형이라는 단어를 만든 현재 우리의 풍토는 권력추구의 화신이라고 불렸던 한명회의 가림막, 압구정과 닮았다. 속으로는 은근히 권력에 다시 다가설 기회를 노리면서도, 겉으로는 자연과 벗하며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났다고 위장한 한명회의 처세(處世) 현장 압구정과 오늘날 우리가 만든 성형이라는 단어는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하필이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맥락의 일이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우연성도 눈에 띈다.

   

한명회가 지었으나 이제는 없어진 압구정 인근에 600년의 세월을 격해 수도 없이 많이 들어선 성형외과 모습에서 몇 가지 생각을 거둘 수 없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면서, 실제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빠져드는 이 성형의 풍조는 일종의 기심(機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의료계는 굳이 ‘모습을 완성한다’라는 이름을 달아 손님들을 불러 모으기에 바쁘고, 수많은 군중은 그에 덧없이 휘말려 든다. 가짜 이름, 허명(虛名)을 잘 만들며 한편으로는 그에 속절없이 달려들어 빠져드는 우리의 기질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600년 전 한반도를 여행한 중국 사절단은 늘 한명회의 압구정을 찾았다. 경치가 빼어나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지금의 압구정동에도 수많은 중국인의 발길이 이어진다. 성형공화국이 뿜어내는 얼굴 고치기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다. 그 점도 어찌 보면 역사의 공교로운 반복이다.

   

그래도 이곳을 찾는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허명을 만들어 사용치 않는다. 얼굴 고치기를 ‘정용’과 ‘정형’으로 알고 그를 실천할 뿐이다. 솔직해서 좋다. ‘모습을 완성한다’는 거품 가득한 성형 식의 허명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서 우리보다는 훨씬 담백하다. 허명을 만들어 맹렬하게 그를 탐하고 좇는 풍조가 어디 압구정동의 성형에만 그칠까. 둘러보면 우리는 그런 허명을 많이 만들고 부추기며, 서로 그를 닮아가려는 분위기에서 살아간다.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가 쌓고 만들며 키워가는 허명과 그 풍조가 얼마나 많은지.

   

대한민국 성형의 광풍(狂風)이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보도로는 국민 1000명 당 성형 건수가 13.5건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아주 확연한 세계 1위라는 소식이다. 이를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서글퍼해야 할까. 그런 고민에서 더듬어 본 압구정동 소사(小史)다.

                                                               
2013-02-01 18: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