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빙심(氷心)에 옥호(玉壺)라

당나라 때 시인 왕창령(王昌齡)은 관료로서 여러 번 좌절한다. 깨끗한 인품임에도 하찮은 실수로 좌천당하는 경우가 여럿이다. 세 번째 그런 일을 당해 그가 지금의 난징(南京)에서 관직을 수행하고 있을 때다. 친구 신점(辛漸)이라는 인물이 찾아왔다.

 

불운의 처지에 빠져 있을 때 찾아온 친구가 어찌 반갑지 않을 텐가. 그러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그 뒤를 잇는 법. 친구가 떠날 때 헤어지기 섭섭한 마음에 그는 배에 올라타 한참을 좇아왔다. 이어 헤어지는 순간에 시 한 수를 적었다.

 

차가운 비 가득 내리는 뱃길을 따라 밤중 오나라 땅에 들어선다         寒雨連江夜入吳

고요한 새벽 친구를 보내는 순간 초나라 땅 산이 외로워 보인다         平明送客楚山孤

낙양에 도착해 설령 친구들이 내 안부를 묻는다면                            洛陽親友如相問

얼음과 같은 마음, 옥으로 만든 병에 담겨져 있다고 전해주오            一片氷心在玉壺

 

어설픈 번역이다. 하지만 친구와의 깊은 우정, 헤어짐의 우울한 정서가 ‘차가운 비 가득 내리는 뱃길’, ‘산이 외로워 보인다’는 시어에 새겨져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정작 주목하고 싶은 곳은 ‘얼음과 같은 마음, 옥으로 만든 병에 담겨져 있다’는 내용의 빙심(氷心)과 옥호(玉壺)다. 아예 둘을 붙여 ‘빙심옥호(氷心玉壺)’라고 적기도 하는데, 이는 청결(淸潔)함과 청아(淸雅)함을 뜻한다. 사람의 인품을 적는 용어로 많이 쓴다. 그늘진 구석이 없으며, 자신의 탐욕을 없애 깨끗하고 우아한 경지에 닿은 사람을 표현하는 일종의 성어다. 보통 잡티가 없이 깨끗한 상태를 일컫는 한자 ‘청(淸)’과 의미가 같다. 어두움이 없어 밝으며, 순수하고 맑다는 뜻이다.

 

왕창령이 처음 쓴 말은 아니다. 그에 앞서 여럿의 사람이 이 말을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마음이 차갑고 맑은 얼음과 같고, 겉모습 또한 은은한 윤기를 뿜어내는 옥주전자 같은 사람. 마음과 외표가 일치해 남에게 정갈하며 참스럽다는 인상을 주는 이가 ‘빙심옥호’에 걸맞은 인물이다.

 

요즘 이런 사람 없을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고위 공직자로 이름이 거론된 인사들은 대개 잡티를 어느 정도, 일부는 꽤 많이 안고 있다. 연일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사람들은 ‘과연 그런 행적으로 공직을 깨끗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도덕성 못지않게 그들이 지닌 슬기와 재능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잡티가 너무 많아 아무래도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다. 세태(世態) 자체가 거의 광적으로 돈과 명예, 즐거움과 자신의 안일(安逸)만을 추구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들 공직자에 묻어 있는 저 티와 흠집이 결국 내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떠올려 본 깨끗한 얼음과 정갈한 주전자다.

2013-02-22 14:5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