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차(茶)가 식습니다…

‘사람이 떠나니 찻물도 차츰 식어간다’는 중국말이 있다. 한자로는 ‘인주차량(人走茶凉)’이다. 숨은 뜻은 우리가 잘 쓰는 말 ‘염량세태(炎凉世態)’와 같다. 때로는 뜨거웠다가, 어느 한순간에는 차갑게 변한다는 의미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거꾸로 갈마드는 경우다.

 

대개는 권력과 권세의 드나듦에 따라 그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롤러코스터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경우에 대한 지적이다. 세태는 한 사람의 힘이 솟고 내려앉는 부침(浮沈)에 따라 그에 엉겨 붙는 정도가 달라진다. 잘 나가는 사람에게는 벌꿀 한 방울에 개미떼 몰리듯이 하다가, 공기 빠진 공처럼 그 사람의 권력이 맥없이 새어나갈 때는 썰물처럼 덧없이 밀려 없어진다는 얘기다.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끝날 때 사람이 흩어져 버리는 풍경은 중국에서 ‘곡종인산(曲終人散)’이라고 적는다. 볼 일 다 보고난 뒤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중립적 묘사이기는 하지만, 세태의 덧없음을 이야기할 때는 뜨거움과 차가움의 반복적 왕래를 지적하는 비판적 용어로도 쓰인다.

 

문(門)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권력의 가도(街道)에서 승승장구(乘勝長驅)할 때에는 그 집의 문 또한 융성(隆盛)함의 기운에 휩싸인다. 문 앞에 장이 선 것처럼 많은 사람과 자동차(옛날에는 수레였다)가 몰려드는 경우다. 중국에서는 ‘문전약시(門前若市)’라고 적고, 그를 응용한 과거의 한반도에서는 ‘문전성시(門前成市)’라고 적었다.

 

권세가의 문 앞은 그런 장마당을 이루는데, 그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의 수레(자동차)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줄줄 이어지는 경우와 수레를 끄는 말들이 죽 늘어서 흡사 길고 긴 용 모양을 이룬다는 형상은 ‘거수마룡(車水馬龍)’으로 적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늘을 찌를 듯했던 권세가의 권력이 급격히 변하는 전변(轉變)의 상황에 닿아 급전직하(急轉直下)해 하루아침에 모든 힘을 잃는다면 그 집의 문전은 갑자기 한가해진다. 그래서 문 앞에는 사람만 보면 급히 도망가는 참새들이 내려앉을 정도로 풍경이 급변한다. 그래서 문 앞에 참새들이 줄지어 앉는다는 의미의 ‘문가라작(門可羅雀)’의 중국 성어가 탄생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 있다. 한자로 적으면 ‘長江後浪推前浪’이다. 기나긴 장강의 물결이 끝없이 흘러갈 때 앞의 물은 자연히 뒤의 물에 의해 밀린다. 세대가 바뀌면서 사람 또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바뀌는 셈이니, ‘산천(山川)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는 우리 식의 한탄과 같은 맥락의 정서다. 중국에서는 ‘사물은 옛것 그대로,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는 뜻으로 ‘물시인비(物是人非)’로 적는다.

 

다 그런 모양이다. 인정의 덧없음을 세태의 염량으로 적는 이치가 말이다. 중국이 지난해 11월 공산당 당 대회에 이어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를 열고 있다. 과거 10년 동안 중국을 이끌었던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의 체제가 다음의 시진핑(習近平)-리커창(李克强) 체제에 길을 내주고 무대 뒤로 완연히 사라져 간다.

 

벌써 이 앞의 두 지도자, 후진타오-원자바오에 대한 평가가 야멸차다. 냉기를 잔뜩 머금은 평들이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른다. 앞의 사람에 대한 평가는 중심을 잡고 긴 시각에서 내려야 한다. 세태의 가벼움이 쏟아내는 말들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 권력의 무상함은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니, 권력의 교체기에 전임자에 대한 평가에서는 가능한 한 신중함을 유지해야겠다. 새 권력자에 대한 부화(附和)와 뇌동(雷同), 지나간 권력에 대한 감정적인 질타와 험구는 가벼운 세태가 만드는 요지경(瑤池鏡)의 허상(虛像)이니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2013-03-08 18:3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