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북핵 사태 부른 것은 중국의 과도한 이해타산_2

-민족주의는 향후 중국의 중심 이데올로기-

 

북한의 핵 보유는 급기야 현실화했다. 동맹국으로서 사실상 북핵을 방관하다시피 했던 중국은 요즘 국제적인 비난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다소 엉뚱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북핵 사태는 중국의 『삼십육계(三十六計)』와 문화적 맥락을 함께 한다. 그 내용은 우리에게 제법 잘 알려져 있다.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넌다는 ‘만천과해(瞞天過海)’에서 시작해 남의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차도살인(借刀殺人)’과 일단 강 건너에서 불구경을 하고 난 뒤 움직이자는 ‘격안관화(隔岸觀火)’를 거쳐 안 되면 튀라는 식의 ‘주위상(走爲上)’으로 마무리하는 그런 내용이다.

 

사실 그에 앞서 중국인이 펼친 모략(謀略)의 정신세계는 매우 화려했다. 일찌감치 커다란 흐름을 이뤘으며 그 도도한 물결은 마침내 명나라와 청나라에 들어와 『삼십육계』로 귀착한다. 그 발원을 따지자면, 아무래도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아 체계성을 획득한 『손자병법(孫子兵法)』이다. 중국의 문명성을 이야기할 때 이 손자가 펼친 병법은 이채(異彩)롭다. 인류의 다른 주요 문명체와 비교할 때 중국인이 발전시킨 이 병략(兵略) 또는 도략(韜略)의 정신세계는 단연 눈에 띄는 특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병략과 도략이란 게 무언가.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다. 손자(孫子)는 자신이 이룩한 병법의 체계 속에서 가능하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자신의 토대를 허물지 않으면서 상대를 꺾는 법 등에 관해 이야기를 펼쳤다. 같은 싸움이되 형(形)과 세(勢)를 활용해 피를 흘리지 않고 싸워 이기는 법, 싸움을 하기도 전에 먼저 이기는 법 등을 강구했다. 싸움의 긴장관계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철학적으로 풀어간 병략과 도략, 그리고 모략의 선구자에 해당한다. 손자와 그 직후의 병법가들에 의해 중국의 모략은 조숙(早熟)의 단계에 접어들고 말았다. 그 이후 펼쳐지는 중국인의 모략은 손자와 그 주변 전략가들의 수준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손자로부터 약 2000년이 흘러 현대 중국의 모략은 『삼십육계』로 모아진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남을 속이는 사술(詐術)이 축을 이루고, 꽤 두터운 실리(實利)의 추구가 바탕을 이룬다. 내용이나 질에서 따지자면, 춘추시대 시공에서 탄생한 위대한 병법가 손자로부터의 완연한 후퇴에 해당한다.

이번 북핵 사태는 중국의 모략적인 정신세계가 드러낸 여러 문제점을 예시하고 있다. 그 모략의 현대적 어의(語義)는 전략(戰略)이다. 중국은 1949년 건국 이전부터 이 전략에서만큼은 매우 강한 면모를 보여 왔다. 냉전 시기에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힘에 편승하면서도 비동맹 외교로 두각을 나타냈고, 이어 핵 실험을 거쳐 미국과의 수교, 개혁개방을 거쳐 이제는 미국과 맞먹는 이른바 G2의 시대를 열었다.

 

그 전략의 바탕은 두터운 실리다. 2006년부터 불거진 북핵 사태를 보는 중국의 전략적 시각은 한 번도 그 실리를 위한 견고한 포석(布石)을 벗어난 적이 없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자국의 경제성장에 주력해 왔다. 한편으로는 그 경제성장의 과실을 집중해 국방력과 과학기술력 제고에 전력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전제가 ‘주변 환경의 안정’이다. 북한의 문제가 한반도의 전쟁을 전제로 펼쳐지지 않는다면, 웬만한 사안은 ‘안정적 환경 유지’의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었다. 아울러 ‘북한 카드’가 미국과의 대결적 구도에서 반드시 해롭지 않다는 실리적 계산도 개입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세력이 자국으로 다가오는 길을 북한이 막아주고 있다는 냉전적 사고의 틀을 유지했고, 그에 따라 여러 카드를 조합하면서 전제 왕조 북한이 보이는 수많은 기형성(奇形性)을 포용했다. 북한은 중국에 아주 유용한 카드라는 인식이 강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이 아직 힘을 유지하고 있는 대만과 맞바꿀 수 있는 카드로도 여겼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아주 현란한 솜씨를 보였다. ‘6자 회담’이라는 틀을 만들어 북한을 유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북한이 결정적인 위기에라도 몰리는 경우라면 짐짓 대국(大局)을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북한의 편을 옹호하는 능숙함도 선보였다. 북한에 관한 중국의 입김이 매우 강할 것이라는 기대는 그래서 나왔다. 미국의 전략가들 또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실력자로 중국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은 중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며, 중국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뛰어주기를 앙망(仰望)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북한은 그런 중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3차 핵실험에 나섰고, 핵무기 보유 완성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얻었다. 중국 내부에서조차 ‘석유와 식량을 대주면서 결국 중국 당국이 얻은 결과가 무엇인가’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의 실책은 무엇일까. 전략에는 강했지만 그 전략을 다시 아우르는 큰 테두리의 전략 마련과 구사에서 실패한 것은 아닐까. 이런 평가가 서구 언론을 중심으로 제법 설득력 있게 나오는 상황이다. 북한의 핵 체계 완성은 다른 관계 당사국에도 뼈아픈 상황이다. 중국만의 실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석유와 식량을 대주면서 북한을 먹여 살리며 그들을 움직일 강력한 지렛대마저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얻었던 중국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안겨 주는 게 북한의 핵실험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라는 그 정체성에 관한 의문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G2의 시대, 세계적 강대국이라는 명예와 지위를 얻을 만큼 중국은 강하고 옳은가에 관한 물음이다. 실리를 추구하며 부국(富國)과 강병(强兵)에 매진하는 중국은 분명 강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의로운가에 관한 물음에서 중국은 편한 입장이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의 용인(容忍)과 방관(傍觀)에서 가능했다. 2006년 이후 이어진 1, 2차 핵실험에서 중국이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면 북한 당국은 핵실험을 멈출 수도 있었다. 석유와 식량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이었으니 북한에 그만한 입김을 행사할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유지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자국의 경제성장,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만 등 자국의 결정적 이해가 걸린 사안에 대한 유효한 맞교환 카드로 북한을 인식한 중국은 결국 그 모든 것을 방관하고 용인하는 결과를 맞았다.

 

중국은 전략이 매우 강한 나라다. 2500여 년 전인 춘추시대부터 자리를 잡아 도저한 흐름을 형성한 모략과 도략, 병략의 흐름을 보면 우리는 그 특징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손자가 존재하던 춘추의 시공에서 이미 완숙의 경계에 닿은 중국 전략 사상의 맥락은 어쩐 일인지 조숙의 수준을 넘지 못한 느낌이다.

 

공자와 노자가 꽃피운 유가와 도가의 사상,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다양한 철학적 사유도 춘추전국 시대에 왕성하게 만개(滿開)한 이후에 2000년 이상의 중국 사상사에서 다시 부흥을 맞았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 문명의 조숙함, 그리고 그 이후로의 쇠락(衰落)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모략과 도략, 병략을 약칭하는 전략의 흐름에서도 그 점은 제법 분명하다. 손자가 쌓은 병략의 높은 긴장성, 철학적 사유는 명나라와 청나라에 착근한 『삼십육계』로 곤두박질 친 느낌을 준다. 손자의 철학적 바탕이 처세(處世)의 실리, 극단적인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따돌리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간계(奸計)로 전락(轉落)했음을 지켜본 경우와 같다는 얘기다.

 

전략을 이루는 바탕이 과도한 자국 중심의 실리라는 점은 중국의 한계다. 문제는 중국이 그를 극복하지 못하고 역시 과도할 정도의 자국 중심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할 때다. 마침 중국은 다소 위험해 보이는 ‘중화민족주의’를 내걸기 시작했다. 후진타오에 이어 등극한 시진핑의 공산당 총서기 취임 직후 연설을 보면 그는 그런 꿈에 젖어 있는 지도자처럼 비친다.

 

중국은 마오쩌둥의 과격한 사회주의 혁명, 덩샤오핑의 단선적 개혁개방이 과거 중국의 이념적 지향이었다면 이를 대체할 중국 지도부의 선택은 민족주의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모략의 전통이 아주 강한 중국은 그 민족주의 틀 안에서 무엇을 시도할까. 일본은 그런 중국을 바짝 경계하고 있으며, 동남아는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중국에 불안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한반도 역시 북핵에 대한 중국의 방관적 태도로 역시 심각한 불안정성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도한 자국 이익 중심의 전략가 기질을 지닌 중국이 민족주의라는 틀에서 머물며 더 큰 포용성을 지니지 못할 때 아시아의 긴장감은 지속적으로 커져 갈 전망이다.

2013-04-05 16: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