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중국의 꿈’으로 중국을 설득할 때_3

이 달 폐막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시진핑(習近平)은 중국 국가주석에 정식 취임했다. 지난해 11월 공산당 당 대회를 통해 당 서열 1위인 총서기에 오른 뒤 국가 행정직을 정하는 전인대의 추인(追認) 형식을 거쳐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주석에 취임한 것이다.
 
그의 취임 연설은 지난해 당 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른 뒤 행한 첫 연설의 연장이자, 결집(結集)이며, 응축(凝縮)이었다. 시진핑은 지난해 당 대회 연설에서 ‘중화민족의 부흥’을 첫 화두로 던졌다. 4개월 뒤의 전인대 국가주석 취임 자리에서 시진핑은 이를 ‘중국의 꿈(中國夢)’이라고 했다.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내용을 압축한 ‘중국의 꿈’이 등장하면서 향후 13억 인구의 중국 대륙을 이끌어 나갈 그의 지향은 분명해졌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강대국, 나아가 전체적인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이루겠다는 국정의 틀이자 전략의 최종 목표였다. 그에 앞서 중국을 10년 동안 이끌었던 후진타오(胡錦濤)의 국정 지향은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이자 ‘과학적 발전관(科學發展觀)’이었다. 후진타오는 그 지향 아래에서 지난 30년 동안 펼쳐진 개혁개방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절치부심했다. 빈부격차의 심화, 도농(都農)의 불균형, 환경오염 등 경제발전의 그늘에 방치했던 문제들에 대한 시선이었다. 시진핑은 그런 전임자의 예와 같이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보여준 셈이다.


중국의 정치는 축선(軸線) 개념이 분명하다. 베이징을 방문해 명대와 청대의 황궁(皇宮)이었던 자금성(紫禁城)과 그 앞의 천안문(天安門) 광장을 둘러본 사람들은 뭔가의 느낌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남북으로 정렬한 자금성 속 누각의 행렬, 그리고 천안문 정문 복판 위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의 거대한 초상화, 이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 게양대, 이어 천안문 광장 가운데 세워진 인민영웅기념비, 이어 다시 남쪽에는 마오쩌둥의 시신이 누워 있는 기념관이 늘어서 있다. 일목요연하며 질서정연한 모습이다. 그 건물들의 배치와 마오쩌둥 초상화 등 소품의 배치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들이다. 그들은 모두 한 축선에 늘어서 있다. 멀리 북쪽의 옌산(燕山) 산맥에서 내려오는 풍수상 개념인 용맥(龍脈)이 흘러지나가는 선이다.


이는 명대와 청대, 아울러 그 이전 수많은 중국의 왕조가 모두 주목했던 무형의 선이다. 그 무형의 바탕 위에 황제가 거주하거나 집무를 하는 건물이 올라선다. 그 선 위에 낸 길은 일반인은 물론, 조정의 대신들도 함부로 올라설 수 없다. 오직 황제만이 걷는 길, 황도(皇道)이기 때문이다. 그 전체의 축선은, 명대와 청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7.3㎞ 정도다. 웬만한 세계의 대도시들은 일정한 축선을 형성한다. 그러나 중국의 수도나 대도시의 축선은 아주 길고 장엄하다. 다른 도시와는 달리 유독 축선을 강조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베이징만 그렇지 않다. 역대 왕조의 수도였던 중국 주요 도시에도 옛 황궁을 중심으로 그어진 축선은 아주 명쾌하며 장중하다.


현대 중국의 축선 또한 오늘날 우리가 베이징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을 보면서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분명하다. 지난 2008년 열린 베이징 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 등이 들어선 단지는 7.3㎞의 옛 축선을 정북(正北) 방향으로 12㎞ 연장한 곳에 들어섰다. 그 축선의 강조는 단지 옛 중국 왕조들만의 취향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중국을 이끌고 있는 공산당의 정치적 축선은 어떨까. 중국 건국의 히어로이자 초기 사회주의 중국의 절대적 지배자인 마오쩌둥은 ‘지속적인 혁명’을 내걸었고, 그 뒤를 이은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과 개방’, 덩의 후임인 장쩌민(江澤民)은 자산가 계급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는 ‘3개 대표 이론’, 장의 후임인 후진타오는 ‘조화사회’와 ‘과학발전관’을 각각 내걸었다. 이들이 중국 건축과 도시 조성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축선의 개념이다. 마오쩌둥으로부터 후진타오에 이르는 역대 중국 최고 지도자의 국정 지향은 모두 중국 공산당 당헌(黨憲)에 실려 있다. 마오쩌둥의 이념적 지향은 ‘마오쩌둥 사상’으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관한 집념은 ‘덩샤오핑 이론’으로, 장쩌민의 자산계급 입당 허용에 관한 조치는 ‘장쩌민 3개 대표 이론’으로,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후진타오의 지향은 ‘과학발전관’으로 실려 있다.


시진핑의 ‘중국의 꿈’이 이들처럼 중국 공산당 당헌에 오를지, 아니면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더 정교한 이론과 사상으로 무장한 뒤 다른 용어로 실릴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의 국정 지향이 전임 지도자들의 축선을 잇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 점만은 분명하다.


-아주 오래 된 ‘강목(綱目)’의 사고-
 
그물을 펼칠 때는 ‘벼리(綱)’를 잘 잡아야 한다. 중심 축선에 해당하는 이 벼리를 제대로 잡은 뒤 그물을 던져야 그 밑에 있는 ‘그물의 코(目)’가 제대로 펼쳐진다. 무엇인가를 이루려 할 때 그 핵심의 부위를 잘 잡고 있어야 하부를 이루는 부분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아갈 수 있다. 그 강과 목에 관한 중국식의 관찰은 결국 강목(綱目)이라는 단어로 정착했다.


명나라 때 나온 중국의 의약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중국에서 나는 의약용 약재에 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늘어놓으면서 그 체계를 ‘강목’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 단어는 또한 ‘벼리를 잘 잡아야 그물코가 펴진다’는 뜻의 ‘강거목장(綱擧目張)’이라는 성어도 낳았다. 13억 인구를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당헌이 매우 강한 정치적 축선을 지향하는 분위기라는 앞의 설명을 참조하면, 시진핑이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의 취임 연설 때 내놓은 단어와 그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국정 지향으로, 그리고 선대의 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축선을 새로 잇는 핵심 개념으로 마침내 ‘중국의 꿈’을 펼쳐 보인 셈이다. 그런 지향이 앞으로 무엇을 담아낼지에 관한 관찰은 꾸준히 필요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 또한 전체적인 지향을 먼저 설명한 셈이고, 그 내용은 미리 짠 구상에다가 현실적 여러 문제의 중요성을 각기 저울질한 뒤 그를 합쳐 종합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시대를 맞은 중국에 그가 내놓은 축선이 등장했다. ‘중국의 꿈’이라는 축선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중국 공산당은 부단한 노력을 아주 치밀하게 기울일 태세다. 그가 추구하는 ‘꿈’이 현실성이 있느냐, 중국의 국정(國情)에 제대로 부합하느냐에 관한 평가는 우리의 몫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꿈’의 지향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우리의 ‘요소’를 그곳에 한데 버무리며 중국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기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시진핑의 ‘꿈’은 전임자가 그어온 축선에서 크게 벗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안정과 성장의 축을 결코 놓칠 수 없는 게 중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진핑과 최고 권력을 형성한 공산당 지도부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부분적인 변용(變容)은 가능하다.


권력의 3대 세습으로 올라선 김정은의 북한 문제도 그중 하나다. 마침 김정은의 북한은 중국 권력 교체기에 핵실험을 강행했고, 중국 지도부는 그에 민감하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부분적으로는 중국 지도부의 북한 전략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전략의 중국’이다. 실용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한 중국 지도부가 그런 북한에 대해 당장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은 그런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의 공동 번영을 위해 핵 도발을 감행하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기본적인 자세 자체를 전환하도록 최대한의 설득에 나서야 할 때다.


경제를 비롯한 일반 분야에서의 한국과 중국 간 교류는 시진핑의 시대에 들어서도 변함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번영과 안정을 위협하는 북한의 문제다. ‘중국의 꿈’에 과연 북한이 부응하느냐에 대한 질문, 그렇지 않다면 향후 무엇이 동북아 공동의 번영과 발전에 필요할 것이냐는 질문이 중국을 향해 집요하게 펼쳐져야 한다. 아울러 그에 대한 전략적 답안을 만들어 중국을 끈질기게 설득해야 할 시점이다. 시진핑은 “길은 발아래에 있다(路在脚下)”고 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은 중국과 함께 땅을 딛는 현실의 발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할 때다.

2013-04-12 13:2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