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화 이민(移民) 집단이 간직하는 속성 - 푸젠(3)

자유분방함이 낳은 해양(海洋)의 기질

중국 사상계의 이단아 이탁오와 북송의 천재적 문인 유영은 착안점은 달랐지만 귀결점은 마찬가지였다. 모두 자유로운 상상을 추구했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일탈을 꿈꿨다. 비에트 사람들의 거주지에 전란을 피해 도착한 수많은 지역 사람들이 섞이고 또 섞이면서 만들어낸 이민사회의 구성원들이 드러내는 특징일지도 모른다.

이탁오와 유영은 제 소회(所懷)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차이를 드러냈을지는 몰라도, 둘은 왕조의 엄혹한 체제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강렬(剛烈)함을 보인다. 웬만한 유혹이나 관습으로는 허물 수 없는 굳건함(剛)과 매서움(烈)이 그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 근대사에서 그런 푸젠의 강렬함을 선보인 대표적인 인물은 임칙서(林則徐)다. 그는 제국주의 열강이 ‘동아시아의 늙은 호랑이’ 중국을 마구 유린하던 시절, 세계 최강 영국에 맞서 아편을 불살라 싸움의 의지를 내비쳤던 인물이다. 중국인들이 자신의 역사에서 ‘민족의 영웅’이라고 꼽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영국의 아편을 불살라 중국의 민족적 정서를 드날렸던 임칙서. 그로 인해 아편전쟁이 벌어진다.


그로 인해 중국은 영국과 아편전쟁에 진입했고, 잔혹한 굴욕의 역사를 써가기도 했다. 아편을 불태운 그의 행위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지만, 그의 강렬한 충정은 지금까지 빛을 발한다. 그러나 임칙서의 보이지 않는 공적이 있다. 그는 다른 어느 청나라 관료에 비해 한 발 앞서 제국주의 열강의 속내를 들여다본 인물이다. 제국주의의 힘을 알았고, 그 힘의 요체를 궁리한 사람이다. 그의 발의로 인해 제국주의 열강에 관한 책자가 중국 최초로 번역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강렬한 성정과 바깥 세상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푸젠이라는 이민사회 출신인 임칙서의 가슴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강렬함과 함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방성의 이민사회 특성이 두드러지게 발현(發顯)해 나타난 현상이 ‘바다로 나가자’였을지 모른다. 물론, 집단 구성원의 성격적인 특징이 그를 만들어낸 근본적 요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유심주의(唯心主義)적 관찰일 게다. 그러나 많은 요인 중에 이민사회의 심리적 특징이 큰 작용을 했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무슨 이야기인가. 푸젠은 바로 수도 없이 바다 바깥으로 나가 낯설고 물 설은 타지를 개척한 ‘화교(華僑)의 본향(本鄕)’이다. 어림잡아 푸젠을 고향으로 두고 바다로 나아가 동남아 등 지역에서 돈을 벌어들인 화교는 1000만 명이 훨씬 넘는다. 특히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 푸젠 출신의 화교는 다수를 구성하며 현지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대만의 총통부. 중국 동남부 해안으로부터 200~220㎞ 떨어져 있는 대만의 인구 대부분은 푸젠을
원래의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다.
대만 인구는 약 2300만명, 그 가운데 80% 이상이 푸젠으로부터 건너갔다.


대만은 푸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대만 인구의 80% 가량이 푸젠 출신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만은 푸젠의 이민 역사가 새로 개척한 별천지였던 셈이다. 1949년 국민당 장제스가 대륙의 패권을 뺏긴 뒤 대만으로 옮겨가기 훨씬 전에 푸젠의 이민은 그 지역에 먼저 정착했다. 국민당이 대만을 통치하기 300여 년 전에 푸젠의 이민행렬은 바다를 건너 대만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대만의 최고 재벌로 꼽히는 왕융칭(王永慶 1917~2008) 대만플라스틱 전 회장은 매우 상징적이다. 한국의 삼성과 같은 대만 최고의 기업을 이룬 인물이다. 그 역시 푸젠 출신으로, 전형적인 자수성가(自手成家)형 이민사회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대만플라스틱의 창
업자 왕융칭. 그는 대만에서 한국의 삼성과 같은 일류 기업을 일궜다.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毛澤東)이 “화교사회의 깃발”이라고 추켜세운 인물이 천자겅(陳嘉庚 1874~1961)이다. 그는 지금의 푸젠 샤먼(厦門)시 지메이(集美) 출신으로 1900년대 초반에 고향을 떠나 싱가포르에 정착한 뒤 쌀과 파인애플 통조림 가공, 고무 생산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 뒤 그는 사회주의 건국과 함께 자신이 벌어들인 부를 고향에 쏟아 부어 교육사업에 헌신함으로써 마오쩌둥으로부터 그런 찬사를 얻었다. 푸젠의 최고 명문대학인 샤먼대학이 바로 그가 일군 고향 후배들의 교육 터전이다.

인도네시아 넘버원의 재벌 린사오량(林紹良 1916~2012)도 특기할 인물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재계를 비롯해 현지 사회에서 아주 큰 영향력을 지녔던 사람이다. 1995년 기준으로 개인 재산은 184억 달러, 계열기업은 640여 개의 대 재벌을 형성했다. 1990년대 세계 10대 부자로 꼽힌 인물이다.

홍콩의 유력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인수함으로써 한국 언론 등에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졌던 말레이시아의 최대 재벌 궈허녠(郭鶴年 1923~)도 마찬가지다. 그는 고향을 푸젠으로 두고, 현지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이민 2세다. 왕성한 비즈니스 활동으로 재벌을 이뤄 지금은 중국 전역에서 샹그릴라 호텔 계열을 운영하며, 수도 베이징에서는 월드트레이드센터 등 굵직한 부동산 개발에 손을 대 명망을 쌓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인 임어당(林語堂 1895~1976)도 푸젠 출신이다. 그는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중국을 바깥 세계에 알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자유분방한 이민사회인 푸젠의 출신답게 그는 일찌감치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해 서구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중국을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문장으로 소개했다.

중국 5세대 지도부의 정점인 시진핑(習近平)은 비록 푸젠 출신은 아니지만, 초기 관료 생활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북부 산시(陝西) 출신인 그가 이민사회의 활력이 넘치는 푸젠에서 어떤 기질을 배우고 익혔을까 궁금하다. 그 5세대 지도부의 한 사람 장가오리(張高麗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는 푸젠에서 태어나 명문 샤먼 대학에서 수학한 인물이다.

장가오리는 성격이 내향적이어서 이민사회의 특성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강인한 정신력과 치밀한 집행력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탁오와 유영의 자유분방함은 없을지 몰라도, 그 문화적 DNA에 숨어 있는 강렬함을 깊이 간직한 인물이다. 푸젠의 기질이 그를 통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를 지켜보는 것도 우리로서는 매우 흥미 있는 대목이다.


마오쩌둥이 ‘화교의 깃발’이라고 했던 천자겅, 인도네시아 최대 재벌을 이룬 린사오량, 말레이시아의 갑부인 궈허녠.
(왼쪽부터)


유머와 해학의 작품으로 해외에 널리 알려진 푸젠 출신 문인 린위탕(임어당).


중국 최고 권력에 오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장가오리. 그는 푸젠 출신으로 명문 샤먼대학을 졸업했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매우 치밀한 업무 스타일로 이름이 나 있다.

2013-07-19 11: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