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화 도연명의 시심이 무르익었던 곳 - 장시(3)

시진핑의 먼 뿌리도 이곳

 

왕안석과 구양수 말고도 유명한 사람은 또 여럿 있다. 이구(李覯)라는 인물도 북송 때의 관료였다. 그 역시 장시 출신으로, 개혁 성향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름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설다.

북송 뒤에 송 왕조는 남쪽으로 쫓겨 내려간다. 북방에서 밀고 내려오는 몽골의 원(元)나라에 밀린 것이다. 그래서 생긴 왕조가 남송(南宋)이다. 남송은 지금의 저장 항저우(杭州)에 도읍을 두고 끝까지 몽골의 원나라에 저항을 시도하지만, 대세는 막을 수 없어 결국 몽골에게 패망한다. 그 남송의 패망을 끝까지 막아보려 했던 인물이 문천상(文天祥)이다.

 


문천상은 충절로 유명한 사람이다. 역시 장시가 낳은 대표적 인물이다.


중국에서는 북송이 원에 밀릴 때 전선에서 활약한 악비(岳飛)라는 인물과 이 문천상을 최고의 애국자로 여긴다. 패망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끝까지 목숨을 바쳐 싸우는 사람의 전형이랄까. 어쨌든 중국은 이 문천상을 악비와 함께 ‘애국자의 상징’으로 치부한다.

이 문천상 또한 장시가 낳은 유명 인물이다. 남송은 몽골의 원나라 세력이 시시각각으로 남쪽으로 몰려오면서 위기가 이어졌던 시기다. 빼어난 실력으로 조정에 몸을 담은 우수한 문인 관료였으나, 문천상은 원나라와의 최종 담판에 참여했다가 그 자리에서 붙잡힌 뒤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다음에는 군사를 이끌고 전선의 지휘관으로 나서기도 한다.

결국 원나라의 압도적인 무력에 의해 포로의 신세로 전락했으나 3년 동안 끝내 입장을 굽히지 않다가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원나라 조정은 그를 고위 관직과 높은 급여로 계속 회유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문천상은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가 몽골의 원나라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지금까지 ‘민족의 영웅’으로 기려지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와 이름을 크게 얻은 장시 출신은 천인커(陳寅恪 1890~1969)다. 할아버지가 청나라 최고위 관료, 부친이 유명한 시인 출신이어서 그의 어렸을 적 별명은 ‘귀공자 중의 귀공자’였다. 천인커가 명문 칭화(淸華)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별명은 ‘교수 중의 교수’였다. 아주 뛰어난 머리에 풍부한 학식 때문에 교수를 가르칠 정도의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손으로 꼽는 천재 천인커.

 

그는 중국이 유럽과 본격적으로 맞대면을 하기 시작한 무렵에 중국인으로서는 본격적으로 유럽의 학문을 연구한 인물에 해당한다. 초년에는 명문귀족이었던 집안의 영향으로 사서오경(四書五經) 위주의 한학(漢學)을 익혔다가, 일본과 미국 및 유럽 등 지역에서 13년 동안 유학하며 서구 학문의 정수를 제대로 배워 들인 사람이다. 천재적인 머리 때문에 22개 외국어를 익혀 학문 영역에서 그를 활발하게 응용한 일화 등으로 유명하다. 그런 천재적 성향과 출신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공산주의 건국 후 마오쩌둥이 몰아간 광기(狂氣)의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로부터 모진 고초를 겪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런 인물들을 배출한 장시는 원래 간월(干越)의 고향이다. 중국 장강 남부 지역에 점점이 흩어져 거주하던 수많은 비에트(Viet)족의 한 갈래다. 첫 회에서도 소개했지만, 이 비에트는 중국 문명이 태동하던 무렵에 실질적으로 장강 남부 지역을 터전으로 삼아 살단 원주민이었다.

이들 간월의 텃밭에 북부 지역의 유목민족 침략을 피해, 아니면 왕조의 교체 시기 등에 간단없이 벌어진 전란을 피해 이동한 중원의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오늘의 장시 문화를 만들어 냈다. 도연명의 예에서 보듯이, 장시의 전통은 ‘강남’으로 일컬어지는 초나라와 오나라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분방한 상상력과 일탈 또는 은일함의 전통이 그대로 전해진다.

우리가 주자라고 부른 주희는 그런 정서를 이어받아 중국의 오랜 유학 전통을 관념적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왕안석과 구양수 등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장시 출신들은 한 결 같이 개혁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굳고 매서움의 강렬(剛烈)함을 지녔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인물 외에 장시가 내놓을 수 있는 ‘명품 문화’는 경덕진(景德鎭)이다. 중국 최고의 도자기 생산지다. 약 500여 년 동안 중국 황실의 도자기를 만들어 황제에게 진상하던 곳으로, 도자기의 생산량과 질량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여서 별명이 ‘세계 도자기의 수도(世界瓷都)’다. 경덕진 외에도 장시가 자랑할 만한 아이템은 많을 것이다.

 


황제의 그릇을 굽던, 중국 최고의 자기(瓷器) 마을 경덕진. 옛 모습을 보존했다는 곳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항상 ‘현재’로 향한다. 향후 10년 중국 공산당을 이끌어갈 ‘새 황제’의 이야기다. 명나라 초반에 그의 먼 조상이 장시를 출발해 허난(河南)성으로 이주했으니, 시진핑 또한 장시의 문화적 맥락을 이은 인물 중의 하나다. 정치인으로서 그가 걷는 길은 어떨까. 왕안석의 개혁적 행보일까, 아니면 문천상의 민족적 정서일까. 우리로 하여금 색다른 상상에 접어들게 만드는 대목이다.

 


중국 최고 권력에 오른 시진핑(왼쪽)과 명가수 출신 아내 펑리위안. 
시진핑은 북부 산시에서 태어났지만, 그 뿌리는 장시에 두고 있다. 

2013-08-02 16: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