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화 동이(東夷)의 맥박이 느껴지는 곳- 산둥(3)

한국 화교(華僑)의 90% 이상은 산둥 출신

우리에게 ‘중국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華僑)다. 대개 ‘중화요리’ 집의 카운터에 커다란 몸집을 하고 앉아서 다소 굼뜨게 행동하며 한국인과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사람들 말이다. 그들의 출신지가 대개는 산둥이다. 99%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의 고향은 대개가 산둥이다.

말수가 많지 않고, 굼뜨게 움직이는 듯 하지만 매우 실속이 있는 행동거지, 거칠어 보이지만 뭔가 의리를 생각하는 듯한 심모원려(深謀遠慮) 식의 말투…. 화교들에 대해 한국인들이 지니는 인상이다. 산둥의 기질은 중국인이 만들어내는 중국의 문화 마당에서도 조금 각별하다. 실리를 지나치게 따지는 다른 지역 중국인들에 비해 산둥 출신들은 의기를 많이 앞세운다는 점에서 퍽 다르다.

아울러 몸집이 큰 편이다. 남방의 중국인들보다 평균적으로 키가 크며, 서북의 황하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보다고 굵고 길다는 인상을 준다. 이들에게는 슬픈 역사가 있다.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반에 산둥 지역을 모질게 휘감았던 가뭄과 홍수의 재난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 때문이다.

이들의 당시 이주는 아주 큰 규모였다. 중국에서는 이 산둥 사람들의 대규모 이동을 ‘闖關東’이라고 적고 ‘추앙관둥’이라고 발음한다. 앞의 ‘闖(틈)’이라는 글자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몰려 나가는 행위를 뜻한다. 제법 빠른 속도로 몰려나가는 일이다. 우리도 이 한자를 사용해 ‘틈입(闖入)’이라고 적는데, ‘뭔가 왕창 밀려온다’는 뜻이다.

뒤의 ‘關東’은 중국인이 지리적으로 보통 만리장성 동쪽 끝을 가리키는 산해관(山海關)의 외부를 말한다. 그러니까 대규모의 중국인들이 산해관 동쪽으로 이주한 현상을 ‘闖關東’이라고 적는 것이다. 이 현상은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산둥의 많은 사람들이 남부여대(男負女戴)의 전란을 피하는 심정으로 모든 가솔을 이끌고 산해관을 넘어 그 동쪽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산둥 등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산해관을 넘어 동북으로 이주한 ‘촹관둥’을 형상화해서 만든 동상의 모습이다.
생존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고단함이 잘 드러나 있다.

그 ‘동쪽’이란 지금의 중국 동북3성, 즉 랴오닝(遼寧)과 지린(吉林) 및 헤이룽장(黑龍江)을 가리킨다. 청나라 만주족의 발원지였던 동북 3성은 당시 인구가 적었지만, 청나라가 다른 중국인의 이주를 막는 봉금(封禁) 정책을 실시해 놀고 있던 경작지가 많았으며 자원도 풍부한 곳이었다. 산둥과 함께 인근 허베이(河北)의 많은 인구들도 이곳으로 이동했는데, 그럼에도 다수는 역시 산둥 사람이 차지했다.

그래서 지금 중국 동북3성의 거주민 중 대다수는 산둥이 고향이다. 랴오닝의 대 도시인 다롄(大連)의 경우 도시 거주민의 85%가 산둥을 원적지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동북지역은 산둥 사람이 사실 상 개척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 일부가 역시 남부여대의 심정으로 이주한 곳이 한국일 것이다.

한국 화교들이 왜 굼뜬 행동으로 신중함을 보일까, 그리고 두터운 의지력으로 역시 살기가 만만치 않았던 현대 한국의 생활환경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등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모질고 힘겨운 이주민의 아픈 역사 기억을 문화적 DNA에 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공융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기질은 매우 강렬(剛烈)하다. 이 ‘강렬’함은 우리가 자주 쓰는 ‘강렬(强烈)’과는 다르다. 앞의 강렬함은 사람의 의지가 매우 굳고(剛), 매서움(烈)을 표현한다. 뒤의 강렬은 봄에 피는 벚꽃처럼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왔다가 역시 한꺼번에 와르르 몰려나가는 짧은 박자(拍子)의 ‘강함’만을 뜻한다.

산둥의 그런 강렬함은 공융의 뒤에도 이어졌다. 산둥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영웅이 있다. 바로 척계광(戚繼光)이다. 그는 명나라의 장수로서 당시의 중국인이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왜구(倭寇)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아울러 중국의 역대 명장(名將) 가운데 가장 잘 싸웠던 사람의 하나로 꼽힌다. 그 역시 대단한 기개와 빼어난 지혜로 당대를 풍미했던 영웅이다.


왜구의 토벌자로 이름을 크게 높였던 척계광의 초상이다.

그는 산둥의 좋은 기질이 좋게 발현한 경우다. 비교적 좋지 않은 모습으로 그 산둥의 기질을 이어받고, 표현한 사람은 장칭(江靑)이다. 그는 현대 중국의 건국 영웅 마오쩌둥(毛澤東)의 후처(後妻)다.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인물이다. 그 역시 산둥이 지닌 강렬함의 계승자다. 그러나 그 강렬함으로 어느 곳에 불을 지폈을까. 1966~1976년 동안 중국을 초대형의 재난으로 몰고 갔던 이른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었다. 결국 그는 감옥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현대 중국에서 이 산둥 사람들은 여러 모로 두각을 나타낸다. 가장 큰 영역은 군대다. 산둥 출신 군인들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축을 이룬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우리 귀에 들려왔다. 이른바 인민해방군 안의 산둥방(山東幇)이다. 강렬한 기질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어떻게 보면 군대다. 이것저것 다 따지는 성격은 군대에 맞지 않는다. 중국 국방을 오랜 동안 휘어잡았던 장완녠(張萬年) 전 국방부장이 대표적인 산둥 출신 군인이다.

장쩌민(江澤民)의 3세대 권력그룹, 그리고 후진타오(胡錦濤)의 4세대에 이어 시진핑(習近平)의 5세대 권력이 올라섰다. 향후 10년이면 제 6세대 권력 그룹이 등장한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이 쑨정차이(孫政才)다. ‘정치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이 사람은 다음 세대 중국 공산당 총서기, 아니면 국무원 총리 정도를 맡을 수 있는 인물이다. 최고위에 진입할 차세대 최고 우량주다. 그 역시 산둥 출신이다.


차세대 중국 권력 1~2위를 다투고 있는 쑨정차이.

산둥의 강렬함은 그에게서 어떻게 발현할지를 지켜봐야 한다. 공융 식의 배짱과 기지로 나타날지, 아니면 척계광 식의 천재적 전략 및 전술로 나타날지 모른다. 마오쩌둥의 처 장칭 식으로 나타난다면 중국에는 재앙이다. 그저 우리는 조용히 그를 지켜볼 뿐, 다른 방법이야 있을 수 없겠지만….

2013-08-20 10:5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