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화 제왕의 엄혹한 기운이 서린 곳 - 베이징(2)

축선의 설계자들

중화민족의 부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까. 적어도 중국의 많은 이들은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을 중화민족의 커다란 경사로 보는 수준을 넘어, 중국이 제대로 일어섰음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민족의 쾌거로 간주했다. 당시의 올림픽에서 중국인들은 제대로 알아차렸지만, TV를 통해 이를 지켜보던 세계인들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점이 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베이징의 옛 도시 축선은 약 7.3㎞로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을 지나, 북쪽의 종루와 고루로 이어지는 데 불과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 축선을 연장했다. 종루와 고루의 북쪽으로 다시 12㎞를 연장해 지은 건축이 바로 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공원이다.

새집을 닮았다고 해서 냐오차오(鳥巢)라고 불렸던 메인스타디움과 물이 흐르는 큐브 모습의 수영장 수이리팡(水立方), 그리고 올림픽 공원 등은 베이징 자금성 정북 방향 12㎞에 있다. 옛 황제의 용맥을 연장해 지은 이 올림픽 공원과 메인스타디움은 과연 무슨 의미를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일까.


화려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자금성 북방 12킬로미터의 전통 축선 위에 지은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의 의미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축선은 황제를 상징했고, 그 황제는 전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축선은 바로 정통(正統)과 적통(嫡統)의 상징이다. 중국 공산당은 황제만이 거닐었던 그 축선을 과거의 유물로 그냥 두지 않고 길이를 늘였다. 이어 그곳에 메인스타디움 등을 지어놓고 베이징 올림픽을 치렀다. 공산당은 그 축선을 다시 활용함으로써 찬란했던 과거 중국의 정통 계승자가 자신이라는 점을 국내와 국외에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에만 그칠까. 결코 아니다. 중국을 통치하는 공산당의 사고에도 그런 축선은 생생하게 살아 숨을 쉰다. 중국 공산당의 강령은 당헌(黨憲)에 해당하는 당장(黨章)에 다 들어있다. 그 중국 공산당 당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鄧小平) 이론을 근간으로…’. 그 뒤를 다시 장쩌민(江澤民)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胡錦濤)의 ‘과학발전관’이 잇는다. 앞의 셋이 중국 공산당 당헌의 핵심이다. 공산주의 근본적 이념과 그를 활용해 중국 건국에 성공한 마오쩌둥의 사상에, 개혁과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의 이론을 접목한 구조다. 거기다가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 지도자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정책적 지향을 다시 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이 중국 공산당의 통치 축선이다.
이 골조에 후대 지도자인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정책 노선을 이어 붙인 구조다.

마르크스와 레닌으로부터 후진타오까지 이어지는 게 바로 중국 공산당의 통치 근간이다. 덩샤오핑까지가 핵심 골조를 이루고,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콘크리트로 녹슬거나 느슨해진 부분을 보완한 모습이다. 이는 중국이 사회주의의 노선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개혁과 개방으로 커다란 전환을 이뤄낼 수 있었던 사상적인 토대에 해당한다.

베이징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금성 한 바퀴 휙 둘러보고 “옛날 황제들이 제법 그럴 듯하게 살았군!”이라며 단순한 감탄만을 할 대목이 아니다. 통치의 근간을 초장(超長)의 축선으로 세우고 정통의 근간을 만들어 명분을 제대로 일으킴으로써 드넓은 대륙을 이끌려고 했던 축선의 설계, 또는 그 안에 담긴 방략의 무게를 느끼는 게 필요하다.

축선은 결코 옛날의 일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이 세상을 뜬 뒤 그 시신을 축선의 포장재로 활용하고 있다. 천안문 광장 남쪽에 있는 마오쩌둥 기념관이 바로 그 포인트다. 왜 세상을 떠난 지도자의 시신을 이 축선의 복판에 올려놓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천안문 광장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그의 초상은 또 어떤가.

그에 관한 시비는 오늘의 중국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그는 과격한 좌파주의 실험인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재난에 가까운 상황을 중국 전역에서 연출했다. 그에 앞서서는 더 극좌적인 실험인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을 벌여 적어도 3000만 명의 인구를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의 대형 초상은 오늘도 천안문 가운데에 걸려 있고, 그의 시신은 ‘죽어서는 흙에 들어서야 편안해진다’는 중국 전통의 ‘入土爲安(입토위안)’ 식 관념을 외면한 채 광장의 남단인 기념관 복판에 놓여 있다. 왕조 시절 황제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했던 전통의 축선에 그의 초상이 걸리고, 그의 시신이 놓인 이유를 우리는 침착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천안문 앞 국기 게양대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천안문 광장. 인민영웅기념탑(앞)과 불이 켜진 마오쩌둥 기념관이 보인다.
전통 축선의 남쪽에 마오쩌둥 기념관, 천안문에 걸려 있는 그의 대형 초상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2014-01-22 10:4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