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화 제왕의 엄혹한 기운이 서린 곳 - 베이징(3)

전통주택에서 읽는 축선

베이징의 대표적 전통 주택은 사합원(四合院)이다. 동서남북의 네 벽(四)이 주택 가운데의 뜰(院)을 향해 모여 있는(合) 꼴이라는 뜻이다. 어렵게 이해할 필요 없이, 이는 우리 한옥의 ‘ㅁ’꼴 형태의 주택을 떠올리면 좋다. 가운데 만들어진 뜰을 향해 사방의 벽면이 모여 있는 ‘ㅁ’꼴이어서 이 집은 안에 들어서면 우선 조용하고 은밀해 보인다.

벽 외면에는 원래 창 하나도 내지 않았던 주택이다. 따라서 사방의 벽은 마치 성채의 성벽과 같은 느낌을 준다. 모든 벽과 건물 구조가 가운데에 있는 뜰을 향해 나 있으니 밖에서는 완연한 폐쇄형 구조다. 내밀하면서 은밀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적합한 건축형태다.

다른 뚜렷한 특징은 남북의 축선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사합원이 많이 생겨나면서 때로는 남북의 축선 구도를 살리지 못한 건축도 등장했지만, 원래의 전통적 사합원은 남북의 축선에 동서의 횡적인 축선이 분명하다. 남북의 축선을 기점으로 가족 구성원의 서열이 분명해진다. 가장 큰 어른이 북쪽의 축선에 거주하고 그를 중심으로 동서 양편으로 나뉘어 짓는 건물에 서열을 맞춰 가족 구성원들이 방을 차지한다.


전형적인 중국 북방의 전통주택 사합원 모습이다. 사방이 벽으로, 모든 건축이 가운데 뜰을 향한 내부 지향적 구조다.

이 사합원은 베이징의 또 다른 상징이다. 그 사합원 주택 양식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여 년 전의 서한(西漢) 시대 무덤에서 ‘ㅁ’자 형태의 사합원 초기 모형이 출토되고 있으니 그 역사는 매우 장구한 편이다. 중국 북방의 대표적 민가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베이징의 사합원이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다.

남북의 축선이 명료한 이 주택은 질서와 위계(位階)의 관념을 자랑한다. 번듯한 구획(區劃)의 의미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베이징 사람들의 인문적 의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질서와 위계에 관한 의식이 분명한 만큼 사람들은 정치적 소양이 매우 발달해 있다. 아래 위를 가르는 게 권력을 사이에 둔 정치적 행위의 근간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적장자(嫡長子) 중심으로 서열과 위계를 매기는 전통적 종법(宗法) 사회의 구조에 딱 들어맞는 구조이기도 하다. 중국 사회가 오랜 농업의 역사를 지녔고, 그런 흐름 속에서 적장자 중심의 종법제도를 발전시켜왔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종법사회 전통에 가장 잘 맞는 주택이 사합원이요, 그 사합원이 대표적인 민가 형태로 자리를 틀었던 곳이 바로 베이징이다.

사실, 이 축선의 구조와 그를 현세의 생활에 제대로 구현해 활용하는 중국의 전통적 사유형태는 더 차분하고 깊게 들여다 볼 주제다.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이 축선의 개념을 지닌 장치는 매우 많다. 그러나 이 글에서 그 면모를 충분히 들여다 볼 여유는 없다. 그저 베이징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긴 도시의 축선을 지닌 곳이고, 전통의 주택마저 그 축선의 개념을 매우 발전시켰다는 점을 우선 말해두기로 하자.

단지 하나 부연할 게 있다. 축선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경계다. 정통과 비정통을 구분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며,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구획의 선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귀한 것과 귀하지 않은 것이 나눠지면서 누가 높고 누가 낮은가의 존비(尊卑)에 관한 관념도 모습을 드러낸다. 일종의 배열(排列)이며, 이는 사물과 현상을 보는 철학적 사유를 대변하기도 한다.


10여 년 전의 베이징 시내 모습. 베이징 사람들은 뛰어난 정치 감각으로 유명하다.<중앙일보 조용철 기자 제공>


따라서 축선은 정치적이며, 사회적이다. 아울러 세상을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경세(經世)의 근간이기도 하다. 베이징 사람들이 대개 정치에 매우 민감하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이런 축선과 관련이 있는 대목일지 모른다. 베이징 택시 기사들은 낯선 손님을 태우고서도 천안문 광장 근처의 중국 권력층에서 벌어지는 정치 ‘뒷담화’를 즐겨 입에 올리는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아울러 축선은 전략의 기초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준비해야 할 일의 순서를 매기는 것이 바로 전략의 토대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뒤로 미루고, 우선 중요한 사안을 먼저 정리하고 그 자리를 잡아두는 것인 전략의 기초다. 따라서 축선이 발달한다는 점은 전략의 사고 또한 매우 풍부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춘추시대 손자부터 삼십육계. 중국의 모략 전통은 유장하기가 세계 제1이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싸움의 방식, 즉 전략을 연구하고 천착했다는 얘기다.

연산산맥으로부터 뻗어 내려오는 풍수상의 용맥을 살려 그 위에 황궁을 짓고, 황도를 건설해 통치의 근간을 삼았던 전통 왕조의 ‘방략’은 오늘날의 중국 공산당 통치술에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천안문 광장의 넓은 대지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았다. 그곳에 광장을 만들어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할 때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한 인민영웅기념비를 만들었다. 고색이 창연한 자금성도 그냥 두지 않았다. 천안문 가운데에 마오쩌둥의 거대 초상화를 걸었고, 그의 시신을 광장 남쪽의 기념관에 ‘모셨다’.

공산당의 당헌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맨 앞에 세운 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이어서 배열했다. 중심축이 분명한 건축의 구조와 닮았다. 덩샤오핑이 사회주의의 토대 위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갖다 붙이는 개혁과 개방에 성공한 이유도 다 예서 나온다. 거대한 혼란을 불러올 수 있었던 실험임에도 축선의 바탕을 그대로 살리면서 현실적 측면에 자본주의의 요소를 도입하는 절충형으로 그 위기를 극복했다.

이는 ‘배열’에 관한 매우 두드러진 사유의 형태이자, 내가 얻어야 할 것과 잃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가르는 전략적 사고의 특징에 해당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하며, 아울러 전략의 마인드가 풍부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 축선의 사고와 연관이 깊어 보인다. 베이징의 인문적 분위기는 대개가 그렇다. 정치적이며 전략적이다.

               
2014-01-22 10:4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