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화 호마(胡馬)가 북풍(北風)에 우는 곳 - 산시(山西)(1)

“胡馬依北風-.”

북녘에서 태어난 말은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반응한다. 우리는 그를 ‘그리워한다’라고 푼다. 제 태어난 곳에 대한 그리움, 사람의 감정을 동물에 이입한 관찰이다. 그런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 있다. 중국 중북부의 험준한 산세를 타고 이어진 산시(山西)다.

기러기는 어떤 새인가. 열을 지어 먼 하늘 저쪽에서 하염없이 날아가는 게 기러기다. 내가 디딘 땅 저 멀리로 날아가는 기러기는 고향 떠난 사람에게는 향수(鄕愁)를, 한 곳에 오래 정착해 너른 세상이 궁금한 사람에게는 무한의 상상과 동경을 준다.

기러기 넘는 관문이라는 뜻의 ‘雁門(안문 중국어로는 옌먼)’으로 적는 곳이 중국에 있다. 이곳의 험준한 산악 지형을 이용해 만든 게 ‘雁門關(안문관, 옌먼관)’이다. 이 관문은 중국에서 흔히 ‘천하 아홉의 요새 중 으뜸(天下九塞之首)’이라고 일컫는 곳이다.


험준하기로 손꼽히는 산시의 안문관. 예로부터 전란이 빗발쳤던 곳이 산시성이다. <산시성 여유국 제공>

왜 기러기라는 명칭을 이 요새에 썼을까. 험준한 산악이라서 기러기조차 쉬어 간다는 뜻에서 붙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곳의 하잘 것 없는 경계를 훌쩍 뛰어 넘어 멀고 먼 저 바깥으로 날아가는 기러기의 존재가 부러워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다.

이 장에서 소개하는 지역은 산시다. 서북에서 동남으로 약 400여㎞를 지나는 거대한 산줄기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태항산(太行山)이다. 중국 북부에서 발달한 황토(黃土) 고원 지대의 동쪽 경계선을 형성하는 곳이어서, 중국의 각 지역 지리와 인문의 생김새를 가늠할 때 항상 중시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우선 누르스름한 황토의 고원지대와 산줄기의 동쪽 너머에 있는 화베이(華北) 평원이 이 산을 경계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이 태항산의 서쪽에 있는 땅이 ‘산의 서쪽’이라는 뜻의 ‘山西’다. 이 산의 서쪽 땅 북부에 있는 요새가 앞에 적은 ‘기러기도 쉬어 넘는 관문’인 ‘雁門關’이다. 기러기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이 관문이 상징하는 바는 바로 전쟁과 전란, 그리고 사람끼리의 다툼과 부딪힘일 것이다.

지역 북쪽에 ‘천하 아홉 요새의 으뜸’이라는 최고의 관문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일산 새겨 볼 만하다는 대목이다. 그 상징처럼, 이 산시에서는 늘 전란이 일었다. 중국이 문명의 덩어리로 뭉치면서 그 외피를 채 굳히기도 전에 이곳은 북방 제 유목민족의 침략 루트였다. 늘 전쟁의 북소리가 번지고, 말들이 일으키는 자욱한 먼지에 휩싸였으며, 무기를 손에 쥐지 않은 사람들은 그 소리와 모습에 놀라 늘 갈팡질팡했던 곳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두려움’을 품은 땅

서쪽 멀리의 칭하이(靑海)에서 발원한 황하는 여러 번 굽이를 치지만 가장 크게 꺾여 북상하는 구간이 이 산시와 옆 산시(陝西)의 경계를 이룬다. 거의 90도 가까이 꺾여 북으로 물줄기가 향하면서 이 발음 비슷한 두 성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시절의 전쟁에서는 항상 그 경계선 북단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산시 경계를 흐르는 황하의 호구 폭포. 차가워진 날씨에 얼어붙는 강은 북방 유목의 침략을 알리는 신호였다.

우리는 그에 연관이 있는 성어를 ‘천고마비(天高馬肥)’라고 한다.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을 노래하는 성어다. 우리에게는, 더구나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가을을 예찬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의 원천을 따져보면 성어가 가리키는 내용은 차라리 재앙에 가까웠다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하늘이 높아진다는 것은 가을의 기운이 다가와 날씨가 맑아진다는 뜻 외에 기온이 내려감을 의미한다.

기운이 내려가면 우선 강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그러면 북방에서 한 여름에 자라난 무수한 풀들을 먹고 말들이 몸집을 키운다. 이어 얼어붙은 강 위를 넘어서는 말들이 황토 고원을 넘어선다. 전쟁의 북소리는 그래서 울린다. 이어 수많은 말들이 엉키며 뒹구는 땅에서는 황토의 먼지가 허공을 메운다.

그래서 천하 아홉 요새 중 으뜸의 요새를 간직하고 있는 산시는 전쟁의 땅이다. 중국 문명의 새벽, 춘추전국 시대의 모두에 불붙기 시작했던 전쟁은 명나라 말엽까지 줄곧 이어진다. 북쪽의 유목 민족은 이 산시의 기러기 관문을 늘 넘나들었다. 초기 흉노부터 돌궐, 달단, 몽고 등 주체를 달리 하면서 유목 민족은 문물이 발달했던 중원지역을 공략한다.

북부의 기러기 관문과 함께 산시 남부 훙둥(洪洞)이라는 곳에는 커다란 홰나무가 있다. 중국인들은 이를 ‘洪洞大槐樹(훙둥다화이수)’라고 적고 부른다. 이는 인구가 원래 정착했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이민(移民)’의 상징이다.



산시 훙둥의 홰나무(위)와 매년 이곳에서 펼쳐지는 ‘뿌리 찾기’의 행사 모습이다.
홰나무는 전란, 나아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중국 인구의 대규모 이동을 상징하는 유물이다.

몽골이 다스리던 원(元)나라가 패망한 뒤 중국은 명나라의 차지로 변했다. 당시 화북과 서북 지역의 인구와 물산이 피폐해졌던 모양이다. 명나라 왕실은 인구가 많았던 산시의 남쪽 지역 사람을 인구 부족 지역으로 옮기기로 했다. 왕조의 강제적인 명령에 따라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수많은 산시의 사람들이 이민 출발지로 모여 들었던 곳이 바로 훙둥이었다.

그들이 훙둥을 떠날 무렵 그곳에는 아주 커다란 홰나무가 있었다고 했다. 고향지역을 떠나는 사람들이 각기 헤어져 먼 곳으로 떠나 만나지 못한 채 살더라도 그 고향의 홰나무를 기억하자고 했단다.

그들 이민 그룹 중의 일부는 아주 먼 남쪽으로까지 진출했다고 하는데, 실제 장강 이남의 강남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해외로까지 진출한 화교 중에는 이곳을 뿌리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가끔 나이가 제법 지긋한 중국 노인네들에게 이 ‘홰나무’ 이야기를 하면 눈가부터 벌겋게 달아오르는 경우도 있다.

지금 산시 훙둥에는 그를 추념하는 몇 개의 기념물이 있다. 당시의 홰나무 그대로였을지는 몰라도, 아주 오랜 수령(樹齡)의 거대한 홰나무가 있고, 중국 정부 당국은 다른 오랜 홰나무의 뿌리를 다듬어 기념물로 내세우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뿌리 찾기’ 행사가 열리는데, 중국 국내외 사람들과 해외 화교 등 20만 명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이렇게 태항산 서쪽의 황토 고원 문명을 대표하는 산시의 북과 남에는 독특한 상징이 두 개 존재한다. 하나는 기러기도 쉬어 넘어갈 만한 험준한 요새 ‘雁門關’, 그리고 전란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민의 상징인 ‘훙둥의 홰나무’다. 둘의 인과관계는 잘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둘의 공통점은 전란과 그로 인해 생겨난 극도의 피폐함, 그리고 헤어짐, 낯선 곳으로의 이민 등이다.

               
2014-01-22 10:4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