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화 호마(胡馬)가 북풍(北風)에 우는 곳 - 산시(山西)(3)

우선 법가 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사람은 이괴(李悝)와 신도(慎到), 상앙(商鞅), 신불해(申不害), 이사(李斯), 한비자(韩非子) 등이다. 이 가운데 이괴는 진나라에서 갈라져 나간 위나라, 신도는 역시 진나라의 후예인 조나라, 신불해 또한 마찬가지의 한나라 출신이다. 여기에 법가의 사유 체계를 완성한 한비자가 한나라 출신이다.


법가의 사상적 뿌리를 제공한 한비자와 이사의 스승 순자(荀子).

또 한 사람을 여기에 추가해야 한다. 바로 순경(荀卿), 즉 순자(荀子)다. 그는 전국시대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가(儒家)의 대표적 사상가다. 하지만 그의 문하로부터 나온 사람이 바로 한비자와 이사다. 더구나 이 순자라는 인물 역시 진나라 전통을 이어받아 무령왕의 개혁정신을 낳았던 조나라 출신이다.

이 정도면 대강의 그림이 그려진다. 법가의 사상적 토대를 이룬 대표적 철학자, 또는 경세가들이 대부분 진나라 전통을 이은 위·조·한의 이른바 ‘삼진(三晋 진나라로부터 갈라진 세 나라를 후세에 일컫는 말)’ 출신이라는 점, 게다가 법가의 최종 완성자인 한비자의 직접적인 스승 순자가 역시 조나라 출신이라는 점 말이다.

따라서 이 장이 소개하는 산시라는 지역은 법가의 전통을 낳고 기른 곳에 해당한다. 그 전통은 진나라 문공에서 조나라 무령왕, 나아가 이괴라는 법가 초기 사상가에서부터 한비자까지 유장하게 이어진다. 법가를 자세히 설명할 여유는 없겠으나, 그 본체는 유가의 사상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드러난다.

맹자가 사람의 본성(本性)을 착하다고 간주하는 성선설(性善說)에 입각해 의(義)라는 덕목을 설파한 데 비해, 순자는 사람의 본성을 악하다고 하는 성악설(性惡說)을 논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하늘 자체를 인격화한 유가의 정통 논리에 비해, 순자는 하늘을 객관의 실체로 다룬다. 따라서 공자(孔子)의 어짊, 즉 인(仁)이나 맹자의 의(義) 등 이상적이며 추상적인 가치보다는 객관적이며 보다 현실적 통제 시스템인 예(禮)와 법(法)을 강조한다.


산시의 헝산 모습이다. 산악이 발달했으며 고래로부터 전쟁이 매우 잦았던 곳이다.<산시 여유국>



이괴와 신도, 상앙이나 신불해, 나아가 이사와 한비자의 사고 구조는 나름대로 차별성을 보이지만 그 맥락은 순자가 주장하는 틀을 따르고 있다.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이며, 추상보다는 구상을, 의리보다는 실질을 숭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법가의 사상적 경향을 그보다 한참 먼저인 진나라 문공, 중간의 조나라 무령왕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관우(關羽)를 낳은 전쟁의 고장

법가의 전통이 이곳에서 나와 자랐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산시는 고래로부터 이상보다는 현실을 더 따지는 지역이었리라. 유가의 사유가 현실 속에서도 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법가는 현실 속에서 현실적인 답을 찾아내는 데 더 착안하는 편이다. 우선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불붙었던 전쟁이 그런 전통을 낳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전쟁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살육, 따라서 눈이 현실에 가 있지 않다면 큰 일이 벌어지니까 말이다.

산시의 지형을 이야기할 때 중국인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표현이 있다. ‘표리산하(表裏山河)’라는 말이다. 전체의 80% 정도가 산악인 데다가 황하라는 거대한 하천이 바깥을 둘러 싼 채 흐르는 모습에 관한 형용이다. 아울러 동서 양측이 모두 높고, 중간의 허구(河谷) 분지가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은 북고남저(北高南低)의 형태다.

따라서 북쪽을 점령한 채 남쪽으로 내려치면 직접적으로 남쪽의 낙양(洛陽)이나, 그 인근의 베이징(北京)의 인후(咽喉)를 직접 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산시 지역이 북방의 유목 제족이 남방의 중원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산시가 중원과 북방의 세력이 늘 부딪히는 거대한 싸움의 현장이었다는 점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산시의 가장 유명한 인물은 누굴까. 대중적으로 아주 잘 알려진 관우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고향 산시 남쪽 윈청에 세워진 동상 모습이다. <산시 여유국>

더구나 산시의 특산 또한 소금(鹽)과 철(鐵)이다. 중국에서 소금과 철은 염철(鹽鐵)로 흔히 붙여 읽고는 한다. 염철은 이를 테면, 국가가 생산하는 물산(物産)의 상징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왕조의 정치·사회·문화·군사·산업 등을 모두 다룬 고전의 명저, 『염철론(鹽鐵論)』이라는 책까지 나왔을까.

산시는 그런 소금과 무쇠가 많이 나기로 유명했던 곳이다. 지형적인 이유로 인해 고대의 거대한 전쟁이 수 없이 일었던 곳인 데다가, 이렇게 생활의 필수품이자 무기의 원재료인 철이 많이 나는 까닭에 산시는 더욱 큰 싸움터로 붐볐을 것이다. 게다가 산시 중부와 남부에서는 고대 전쟁의 전략 물자인 말(馬)이 많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산시는 사람 사이의 싸움이 거세게 불붙을 수밖에 없었던 지역이었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나는 소금은 바닷물을 증발해 만드는 천일염이 아니라 내륙의 소금이다. 산시 남부에는 옌츠(鹽池 염지)라는 곳이 있다. 바로 막대한 소금을 생산하는 거대 호수의 이름이다. 소금은 인류 생활의 필수품이다. 소금 없이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 이 거대한 소금 호수 때문에 중국인들은 이곳이 중국 문명의 발상지일지도 모른다는 추론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 요(堯)와 순(舜), 우(禹) 등 전설 속의 고대 임금이 이룬 왕조의 역사 무대가 바로 이곳 산시라는 얘기는 중국인이 일반적으로 내놓는 가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재했던 역사의 기록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가 많다. 그보다 우리 눈을 자극하는 인물은 바로 관우(關羽)다.

그는 산시 남부의 윈청(運城) 출신이다. 그에 대한 설명은 달리 필요가 없을 정도다. ‘삼국지(三國志)’의 가장 뛰어난 무장(武將)으로 유비를 보필하다가 죽은 인물이다. 그가 중국 왕조에 의해 추앙받는 계기는 고향 인근의 소금 호수, 염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북송(北宋) 때의 황제가 이곳 염지에서 생산하는 소금이 줄어든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내륙의 거대한 소금 생산지에 물이 불어 염도가 낮아지고, 생산량 또한 줄어들면서 조정의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하루 밤 꿈에 관우가 나타나 “먼 옛날 이곳에서 황제(黃帝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간주하는 신화 속 제왕)와 싸움을 벌이다 패한 치우(蚩尤)가 일을 벌이고 있으니, 내가 그를 몰아내겠다”고 했단다.

관우의 장담대로 그 다음부터 호수에 유입하는 물이 줄어들면서 염도가 높아지고, 소금 생산량도 높아졌다는 보고를 들은 황제가 그를 신격화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북송 이후 관우는 역대 왕조가 모두 떠받드는 인물로 변했다. 공자가 역대 왕조의 정신적 지주인 문성(文聖)이라면, 관우는 청나라 때까지 역대 왕조가 떠받들었던 무성(武聖)이었다.


산시는 명대와 청대를 주름잡았던 유명한 상인 그룹, 진상의 고향.
막대한 부를 쌓았던 그들은 산시 곳곳에 웅장한 저택을 짓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중 하나인 ‘왕가대원’ 모습. <산시 여유국>


아울러 지금까지 기술한 역대 산시 출신 유명 인물들의 후예로 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명나라 시절부터 이름을 얻어 청나라 말 때까지 중국의 비즈니스 분야를 장악했던 산시 상인 그룹이다. 이들은 옛 산시 이름을 빌려 흔히 진상(晋商)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만리장성을 쌓는 데 필요한 물자 동원에 앞장서면서 그 대가로 소금 판매 및 유통권을 쥐면서 발전해 은행업과 무역업으로 거대한 부를 쌓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남긴 대저택 교가대원(喬家大院)과 왕가대원(王家大院) 등은 요즘의 중국 내국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이는 관광명소다.

서한(西漢)의 명장 위청(衛靑)과 그의 외조카 곽거병(霍去病)이 이곳 출신이고, 성어 ‘완벽(完璧)’의 주인공이자 조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인상여(藺相如)도 산시가 고향이다. 문인으로는 백거이(白居易) 등이 눈에 띄고, 국민당 시절 권력자 장제스(蔣介石)의 동서로서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던 쿵샹시(孔祥熙)도 이곳 태생이다. 최근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이자 충칭(重慶)시 당서기로서 집단지도체제에 반발했다가 낙마해 무기징역형까지 받은 보시라이(薄熙來)와 그의 부친이자 공산혁명 원로 보이보(薄一波)도 산시 출신이다.

               
2014-01-22 10:4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