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중국 정치인 스타일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으로 재임할 때인 2004년의 일이다. 랴오닝(遼寧)성 성장을 맡고 있던 보시라이(薄熙來)를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보시라이라는 인물은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다. 얼마 전에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영국인 독살 사건, 부하인 왕리쥔(王立軍)의 미국 총영사관 망명 기도 사건으로 공산당 정치국원 및 충칭(重慶)시 당서기를 내려놓고 이제는 사법의 심판대에 오른 인물 말이다.

 

이 사람 대단히 ‘튀는’ 인물이다. 그를 면담하러 랴오닝 선양(瀋陽)에 찾아간 한국 포스코 사장단 등 일행을 앉혀 놓고 쉴 새 없이 떠들던 사람이다. 좌중에는 그의 부하인 랴오닝 부성장이 배석했는데, 보시라이의 호명이 떨어지면 부리나케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가슴에 세우고(중국인은 이런 행동을 궁서우-拱手-라고 적는다) ‘이름 불러주셔서 황공무지합니다’라는 표정을 짓기에 바빴다.

 

“한국은 이 기회에 무조건 투자해야 한다” “우리가 다 책임진다” “아무 염려 말아라”-. 보시라이 성장이 기자를 포함한 포스코 일행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던진 말이다. 제스처는 무협영화에서 늘 위대한 행위를 선보이는 주인공보다 더 컸다.

 

그는 이듬해 중앙으로 진출해 국무원 상무부장을 맡는다. 일종의 영전이었다. 그는 베이징 중앙 관가에서는 비교적 조용했다. 그래도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07년 중국 서남부의 최대 직할시인 충칭의 당서기로 내려가더니 급기야 일을 벌이고 말았다. 조폭을 죄다 잡아들이고, 기업의 땅을 반 강제적으로 몰수해 싼 값의 아파트를 지어 서민들에게 나눠주고, 중국 지도부와는 노선이 다른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식의 사회주의 회고 붐을 일으켰다. 잘한 일도 있고, 무리하게 집행하다 보니 잘못한 일도 많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포퓰리즘적 성격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였다. 역시 그의 성격대로 ‘튀는’ 방식이었고, 급기야 그의 막료이자 공안 담당 책임자인 왕리쥔이 청두(成都)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에 망명 차 진입하면서 그의 정책 드라이브 이면에 숨어 있던 부조리가 드러났다.

 

현 중국 공산당 총서기 후진타오(胡錦濤), 차세대 제1 권력 시진핑(習近平) 등 중국 최고 권력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말을 아끼고, 표정의 변화가 없으며, 행동이 신중하다. 중국의 정치권에서는 이런 스타일이 믿음을 준다. 말이 많고,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며, 돌발적인 아이디어를 마구 꺼내며,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권력 최고층에 진입하지 못한다. 중국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랄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孔子)는 “빼어난 말솜씨에 낯빛을 늘 좋게 하는 사람은 바르지 못하다(巧言令色, 鮮矣仁)”고 했다. ‘나무가 크면 바람을 부른다(樹大招風)’는 말도 있다. 중국에만 있는 말도 아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 속담도 마찬가지다.

 

보시라이는 곧 중형에 처해질 상황이다. 자칫하면 사형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에서 ‘튀는 스타일’ 다루는 법이 이렇게 가혹하다. 그러니 중국 지도부가 중후장대(重厚長大)의 중장기 국가 비전을 내고, 또 그를 집행하는 능력까지 선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의 ‘모난 돌’은 정을 맞아도 제법 잘 버틴다. 돌이 모질거나, 그를 때리는 정이 부실하기 때문이겠다. 한국과 중국의 차이, 권력을 구성하는 인물의 됨됨이나 스타일에서도 드러난다.


▶ 유광종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베이징ㆍ타이페이 특파원, 중국연구소 부소장)


2012-10-10 11:5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