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7山 2水 1地

KOTRA 타이페이 양정석 관장의 <7山 2水 1地>

 

 

평지보다 물이 많은 동네, 물보다 산이 많은 그곳을 다녀왔다. 높고 험준한 산 일곱, 쉽게 넘나들 수 없는 하천 둘, 그리고 그 안에 고립돼 있는 척박한 땅 하나. 7산(山) 2수(水) 1지(地)라고 부르는 곳이다. 저장성(浙江省) 원저우(溫州). 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도 “중국의 유태인이 누구?”하면 “원저우 사람”이라고 하듯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다.

 

그 이름의 유래는 이렇단다. 당(唐)나라 고종(高宗)이 “겨울에 큰 한파가 없고, 여름에는 혹서가 없다”고 했다는 것. 추위도 더위도 특별하다고 할 만큼 대단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살기 좋은 날씨를 지닌 곳이 원저우라는 얘기다. 원저우는 3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동쪽으로는 바다와 접해 있어, 예부터 전란(戰亂)을 피해 이주해 온 사람이 많았다. 왕조의 수도(首都)를 저장의 항저우(杭州)로 정했던 남송(南宋)시대, 바다를 끼고 교역에 힘썼던 원저우는 당시 항저우를 제외하곤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

 

특히 고종은 금(金)나라의 위협을 피해 잠시 원저우로 피신했는데 이때 관료, 귀족, 수공업자, 소상공인, 문인 묵객에 민간 예술가들이 찾아와 가장 번성했던 시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개혁개방 이후엔 사람은 많고 땅은 부족한 상황에서 자구책으로 새로운 생존공간을 만들어야 했고, 그 결과 수공업을 위주로 하는 자영업자가 급속히 늘어났다. 이후 라이터, 신발, 안경으로 돈을 번 원저우 사람들은 특유의 장사수단으로 원상(溫商)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 그들이 만든 부(富)는 사실 가늠하기 어렵다.

 

2011년 원저우를 방문할 당시,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와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부도기업이 속출하면서, 이들 기업에게 돈을 빌려준 원상들이 크게 타격을 받았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원저우 상인들이 몰락한다”는 수치스러운 말도 들었다. 그러나 막상 원저우에 가보니 자금경색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여러 풍문과는 달리 현지 기업인들로부터는 오히려 “별 것 아니다”라는 반응도 함께 들었다. 현지 관료들은 그런 현상에 대해 난감한 표정을 짓기도 했으나, 곧 극복할 사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대만 기업가들 사이에서도 원저우의 어려운 이야기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원저우 비즈니스맨들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

 

원저우를 방문했을 당시 현지에서 만났던 어느 기업인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원저우 사람들은 폐쇄적인 문화를 지녔다. 자신의 경우 친구들끼리 리치 클럽(Rich Club)을 결성(현재 17명)해 투자하는데, 부동산과 주식 등 각 영역에서 좋은 투자 아이템이 들어오면 멤버들에게 우선 그 내용을 통보한다. 이 가운데 관심을 보이는 5명을 한 조(組)로 만든다. 투자 수익률은 평균 은행 이자율의 2배 이상을 겨냥한다. 순번제로 투자를 진행하다가 만일 한 조에서 자금이 부족하면 다른 조에 있는 사람이 보충하는 구조다.

 

한마디로 포트폴리오를 잘 하는데 여러 분야에 투자해 한 분야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다른 부분으로부터 손실을 만회하는 구조로, 특히 손절매를 잘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10억을 투자했는데 현재 상황이 좋지 않으나 조금만 더 투자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도 더 이상 투자하지 않는다. 리스크헤징에 탁월한 사람들이다. “못 먹어도 GO하는 한국인”과 뇌 구조가 달라 보인다.

 

산과 바다는 원저우 사람들을 밖으로 내모는 원동력이었다. 180만 명의 원저우 상인들이 중국 전역에서 활동 중이다. 원저우 출장 당시 성(姓)이 멍(孟)씨인 부시장과 오찬을 할 때였다. 그는 “얼마 전 이탈리아에 출장 갔다가 좋은 포도주가 있어서 원저우 상인에게 소개해서 수입하도록 했는데, 자기네 네트워크를 통해 아주 잘 팔린다”고 했다. 지나쳐 버리기 쉽지만 이는 우리 기업이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부분이다.

 

“중국인은 의리는 있지만 정은 없는 것 같다.” 어느 한국 기업인의 이야기인데,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느낌으로 말했는지는 알 수 있을 듯하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철저한 ‘신상보호’를 한 가지 예로 들었다. 친구끼리 부부동반으로 만날 때 한 친구가 애인을 데리고 와도 그 사실을 그 친구 부인에게 말하지 않는데, 이는 친구끼리 의(義)가 상하고 잘못하면 막장까지 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부분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산둥(山東) 칭다오(靑島)의 모 상담 현장에 친구를 따라 온 중국인 관료가 있었는데 나이 차가 꽤 나 보이는 여자와 같이 왔다. 나중에 물어보니 애인이라고 했다.

 

이는 상대방의 영역과 취향을 철저히 인정해 주는 관행 때문이라고 했다. 친구 공장조차도 방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친구 공장에서 좋은 것을 배워 오거나, 제품을 모방해 생산할 우려 때문이다. 친구 공장에서 직원을 빼내 와도 내색조차 안한다. 친구가 빼낸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이 독단적으로 자리를 옮긴 것일 수도 있고, 게다가 후자의 이유 때문에 언성이 높아진다면 자신들의 네트워크가 무너질 가능성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인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2012-12-04 18: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