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독식(獨食) 문화와 나눠먹기(分贓) 문화

KOTRA 타이페이 양정석 관장의 <독식(獨食) 문화와 나눠먹기(分贓) 문화>

 

 

중국에서 무역업을 하는 성격 급한 친구 K사장이 있다. 한문학을 하셨던 아버님의 강압(?)으로 어려서부터 『논어(論語)』를 가까이 했으나 억지로 배우다 보니, 공자(孔子)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공자가 상황과 묻는 사람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해 주는 것에 대해, “성인이란 사람이 왜 헛갈리게 이렇게 대답했지?”라며 불만스러워했다.

 

베이징에 거소를 정한 K사장은 신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저장(浙江)성 이우(義烏)에 제2의 거점을 마련했다. 자본이 넉넉지 않은 터라, 아파트 겸 사무실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일 도와 줄 사람을 찾다가, 한동안 베이징에서 손발을 맞춰 오던 중국인(女) 2명이 합류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 아파트에서 K사장과 중국인 여자 2명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학에서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전공했지만, 학창 시절인 1980년대 초에는 중국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전무했던 시기라 중국(어)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던 K사장은 졸업 후 10여 년 동안 식품유통업계에서 잔뼈가 굵다가 동남아시아 금융위기를 겪고 2000년대 초반 가족과 함께 홀연히 중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초기 중국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전형적 한국 남자인 K사장은 중국인과 협상할 때 초기 5분 이상을 끌지 못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라는 선 굵은 담판으로 중국시장을 노크했으나 결과가 좋지 못했다. 기대감은 늘 가득했으나 사람의 장벽에 부닥친 K사장은 점차 자신감을 잃어갔다.

 

실패를 경험하면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타협과 협상의 귀재인 중국인과의 비즈니스에서 그들의 속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했다. 사전적으로는 ‘좋다’, ‘괜찮다’라는 의미의 중국어 ‘하이커이(還可以)’가 실제로는 “맘에 썩 드는 것은 아니다”라는 느낌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했고, ‘좋은 친구(好朋友)’보다는 ‘형제(兄弟)’라고 불러야 진짜 중국인과의 ‘관시(關係)’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치를 따지자면(按理說)’이라고 말을 할 때에는 상대방의 입장, 나의 상황, 앞으로의 진행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종 혹은 그 전 단계의 입장을 언급한다는 것을, 중국인이 상대방 면전(面前)에서 ‘노(no)’라고 하지 않는 이유도 깨달았다. ‘관시’의 진정한 의미가 이너 서클(inner circle) 안에 들어가는 것이며,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동력이 ‘이(利)’라는 것도 몸으로 체득했다. 거칠게 말하면 관시는 돈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중국인과의 대화나 협상이 능숙해졌다. 공식적인 협상 테이블에서 결론을 잘 내지 않는다. ‘판쥐(飯局: 밥 먹는 자리를 만들고, 식사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일종의 게임)’를 활용하여 결론을 낼 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인의 장벽을 넘기 시작한 점이다.

 

중국은 칸막이가 높은 사회다. 사적인 이익의 영역이 확실하다는 뜻이다. 칸막이를 넘어 상대편 영역에 들어가는 것, 즉 관시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 관시란 말은 많은 책에서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듯이 사전적으로는 사람과의 관계를 뜻하지만, 중국에서는 다른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좀 더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영어로 ‘human relationship’이라고 번역하지만, 왠지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번역을 ‘guanxi’라고 했던 것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관시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지연, 혈연, 학연 등과 같은 전통적인 인간관계가 밑바탕으로 깔려야 하고, 그것이 오랫동안 좋은 관계로 발전해야 형성될 수 있다. 술 한잔 같이 마시고 어디 같이 가서 의기투합했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그런 쉬운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인적보증의 수단으로서 책임을 공유하는 것인 만큼 상대방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한다.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면 그 이후로는 ‘그들만의 리그’가 벌어진다. 리치 클럽(rich club)을 만들어 좋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공동으로 투자하고 성공하면 이익을 함께 나누지만, 실패하면 손실을 1/n로 최소화시킨다. 비즈니스에서도 관계자끼리 이윤(돈)의 분배(share)가 잘 이뤄진다. 간혹 이런 질문을 하는 한국 기업인이 있다. “중국 수입상에게 100위안에 제품을 넘기는데 최종 소비자(end user)에게 실제 공급되는 가격은 500위안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직접 최종 소비자에게 공급하면 100위안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그 사람도 좋지 않겠냐?”

 

이때 하는 말은, “최종 소비자를 만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수입상의 방해나, 내부 사정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적합한 상대(right person)를 만나는 것이 어렵고, 또한 만나더라도 계약을 따내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100위안 이상 받는 것은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차액 400위안에는 관세나 각종 세금 이외에도 납품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주어야 하는 떡고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어느 누가 떡고물을 포기하겠느냐! 사장님께서 그 모든 사람에게 under table money를 줄 수 있을 정도로 꽌시를 만들 수 있으신가요”라고…….

 

K사장이 중국 측 파트너에게 이익을 나눠 주면서 사업은 점차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K사장의 한마디가 가슴에 슬며시 다가왔다.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게 해준 사람은 중국인이지 한국 사람이 아니다. 중국인이 한국인에 비해 돈을 잘 버는 이유 같다.”

 

며칠 전 대만 남부에서 휴대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해 유통시키는 기업 R사(L사장)를 방문했다. L사장도 이야기 도중 비슷한 말을 꺼냈다. “나를 돈 벌게 해준 것은 대만기업이지 한국기업은 아니었다. 한국기업은 혼자 벌어서 혼자 쓰는 구조고 대만기업은 같이 벌어, 함께 쓰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중화권 무협소설의 절대고수 김용(金庸)의 소설을 좋아한다. 중국인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탁월한데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녹정기(鹿鼎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기생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우연한 기회에 궁중에 들어가 거세하지 않고 황제를 모시는 내시로 살면서 놀라운 임기응변과 언변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는 주인공 위소보(韋少寶). 그가 궁중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의 하나는 분장(分贓)이었다. 빼앗은 재물이나 우연치 않은 기회에 얻게 된 재물을 황제를 모시는 무관이나 내시, 고위관료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는 방식이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내시로부터, 막대한 재물을 받는 무리들은 위소보를 향해 아낌없는 충성을 보인다. 황제의 말을 거역하여 도망갈 때에도 목숨을 담보로 주인공의 탈출을 도와주는 사람이 이들 중 한 명인 무관이었다.

 

다시 K사장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저장의 이우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혼자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중국 파트너(女)도 혼자서 외지에서 사업하는 것이 쉽지 않아, 서로 신뢰가 쌓여 있는 그들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야릇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매우 시스테믹하게 움직인다.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생활비는 남자가, 가사는 정확히 3인이 분담하며, 이윤 배분도 역할 정도에 따라 2:3:5 비율로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red line을 넘지 않기로 했다. K사장 부인도 적극 찬성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형태의 동거가 가능했을까? 13억의 인구가 서로 경쟁하는 중국이라는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친구 혹은 관시다. 이를 위해 이제 최소한 중국에서의 비즈니스는 독식(獨食)보다는 나눔(?)의 문화를 정확히 이해해야 할 시점이다.

2012-12-24 15: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