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중국 협상의 이면(裏面) - 집단지성과 貨比三家

"열다섯 살의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인생을 안다고 자부했다. 서른다섯 살의 나는 소설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거들먹거렸다. 마흔아홉 살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소설가 정지아씨가 발간한 소설책 『숲의 대화』에 나온 작가의 고백이다."(중앙일보 2013.02.07)

 

중국으로 밥 먹고 산 지 벌써 30년 되었다. 젊은 날, 동경의 대상이던 이소룡의 “아뵤~”를 수없이 외쳤던 시절까지 포함한다면 40년 가까이 흘렀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싶은 것이 중국이다. “그 사람을 알고, 얼굴을 익혀도 종내 마음만큼은 알 수 없어(知人知面不知心)”서 그런가.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시작된 유구한 역사, 피와 땀으로 점철된 인간의 이야기가 뒤섞인 중국에 대해, 일천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글을 쓸 때마다 매우 조심스럽다. 특히 중국인의 마음을 엿보는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정지아씨의 한마디가 더욱 마음 깊이 다가온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래도, 적은 경험과 지식이지만,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분들께 자그마한 도움이나마 되고자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겠다. 아무쪼록, 이 글을 보는 독자들께서는 “중국은 이렇다가 아니라, 이런 부분도 있다”라고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

 

유태인과 함께 천부적인 상인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중국인. 그들은 천부적으로 교섭과 협상 능력이 뛰어나다.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상대방과의 교섭에서 이기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자기 방어수단이 되어 왔다. 잔인한 역사 속에 살아왔던 것과 인치주의(人治主義) 속성이 매우 강력한 문화적 바탕과 사회구조 속에서 중국인들은 오랜 시간 치열하게 교섭하고 협상하며 살아왔다. 교섭과 협상이 일상화되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중국어에 반국(飯局)이란 말이 있다. 宋나라 때 생긴 말로, 본래 뜻은 저녁자리 혹은 연회를 의미하나, 100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局'의 기본적인 의미(정세나 처한 환경)이외에 '도박'이나, '모임' 또는 '상대방을 속여서 어떤 이익을 취하는 것' 등의 파생적인 뜻도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저녁자리”로는 중국의 역사를 바꾼 항우와 유방의 홍문연(鴻門宴)이 있다.

 

몇 년 전엔 '飯局'이란 통속소설도 등장해, 초대, 연회의 시작,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상대방을 이해시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지를 잘 그려주었다. 중국인의 저녁자리 속살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중국 비즈니스에서 협상은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뤄지나, 보다 내밀한 협상이나 결정적 순간은 저녁자리 혹은 관계자와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중국식 협상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종종 낭패를 당할 수가 있다.

 

중국에서 근무할 때다. 가끔 화를 씩씩 내면서 사무실에 찾아오는 한국 기업인(A)을 맞이하곤 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중국 바이어(B)와 상담을 잘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기뻐하며 돌아왔는데, 나중에 딴소리를 해서 미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못 믿을 놈들'하면서 거친 언사를 내뱉곤 한다. 중국 바이어의 행태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배경적 요소로는 집단주의 문화와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는 ‘교토삼굴(狡免三窟)’, 물건을 살 때 세 곳 가게의 가격을 비교해 보라는 ‘화비삼가(貨比三家)’의 전략을 들 수 있겠다.

 

중국인은 끼리끼리 잘 논다. 중국에서도 그렇고 대만에서도 그렇고, 외식을 할 때 보면, 식당마다 가족 혹은 친구들이 여럿이 모여 식사하며, 놀며 지내는 모습을 자주 본다. 단출하게 와서 먹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익을 함께 하는 사람끼리의 집단주의적인 성격이 농후하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할 때도 혼자보다는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 한다. risk-hedging을 위한 측면도 있지만, 힘을 모아야 살 수 있다는 중국인 특유의 DNA가 꿈틀됐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에서는 항상 '나'보다는 '우리'라고 표현하며, 결정을 위로 미룬다. 실제 누가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 협상재량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비교적 명확한데 반해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의 협상자는 상황에 따라 바뀐다. 총경리(사장)나 동사장(회장)이라고 해도, 조직이 의견일치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고위직이라고 해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승낙 여부를 수 없이 다시 묻는 형태를 보게 된다.

 

앞서 화를 낸 사장님도 협상자로 나온 사람(B: 총경리 혹은 동사장 포함)와 이야기를 잘 했다고 판단했으나, 회사로 돌아온 B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이해 당사자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A사장과 얘기했던 것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길을 알았을 것이다.  중국인 A는 영리한 토끼가 등장하는 '狡免三窟'의 고사나 물건 고르기 전 다양한 가격 비교를 행하라는 '貨比三家'라는 전형적인 중국식 비즈니스 마인드와 사고방식에 따라 다른 경쟁 제품을 살펴보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과의 협상에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의 전략을 역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다.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근무 시절 알게 된 K사장 이야기다. K사장 동네 근처에 제법 규모를 갖춘 재래시장이 있다. 주로 해산물을 중심으로, 과일과 약간의 채소 등을 파는데 외국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칭다오 사람이 아니면 바가지를 쉽게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K사장은 잘 속지 않는다고 했다. 단골도 속이는 사람들이 중국 상인인데, 어떻게 해서 속지 않는지 물어보았다.

 

K사장은 갑오징어 사는 방법을 예로 들려 주었다.

 

 1) 먼저 단골 가게를 몇 개 만든다 ( A, B, C, D, E)

 2) A가게에서 산 갑오징어를 B가게에 가서 무게를 달아본다.

     - 중국에서 종종 속이는 것이 물건의 무게다

 3) 다시 A가게에 가서, 무게가 차이난다고 항의하며 다시 달라고 한다.

     - 이때, B 가게 주인이 큰 소리로 A가게 사장에게 “부족하다. 더 주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4) 그럼 A가게 주인이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부족한 양만큼 더 준다 (그 이상은 안 준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면 A든 B든 어느 가게에서도 K사장을 속일 수 없다. 그래도 그는 가끔 한 번씩 이런 확인절차를 거쳐 물건을 산다고 했다. 역으로 활용한 '貨比三家'다. 협상장에 나와 있는 중국인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조직이고 문화라고 생각해 보자. 저 뒤에 누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몇 다리 뒤편엔 조어대(釣魚臺)의 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중국인과의 협상에는 반드시 긴 호흡이 필요하다. K사장이 갑오징어를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는가.

 

공자님이 갈파했다. '欲速者不達'(빨리 가려하면 도달할 수 없다).  

                                                                                               

2013-02-08 12:0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