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중국 비즈니스(협상)의 꽃인가 아니면 어둠인가 - 미들맨(middleman)

KOTRA 타이페이 양정석 관장의 <독식(獨食) 문화와 나눠먹기(分贓) 문화>


비즈니스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혹은 수출업자와 수입업자를 중간에서 연결해 주는 중간상 또는 중개인, 중재자로 풀이되는 존재가 ‘미들맨(milddleman)’이다. 다른 말로는 ‘브로커(broker)’, ‘딜러(dealer)’라고도 부르는데 한국에선 어감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중간상의 농간에 피해를 입어 이들을 성토하는 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밭에 있는 배추가 매장에 올라가면 6배 뛰는데 그 사이에는 중간상(유통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유통단계(중간상)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신임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도 볼 수 있다. 또 식탁 물가를 잡기 위해 반드시 유통부문을 개혁(중간상을 줄이는 일)해야 한다는 고위 당국자나 소비자의 격양된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중국 비즈니스에서도 중간상 때문에 커다란 낭패를 본 사례가 쇠털(牛毛)마냥 무수히 나온다.
 
‘J’라는 선배가 있다. 중국 주재원 생활도 오래 했고, 한국 내 주요 기관에서 “중국에 가면 이러 저러한 것 조심하시고, 사기 당하지 마세요” 라는 중국 비즈니스 강의도 많이 한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J선배가 얼굴이 누렇게 떠가지고 사무실에 찾아왔다. 차 한 잔을 내놓고 그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인즉, 한창 석탄 가격이 올라갈 때 한국 파트너(B사)의 부탁으로 중국 석탄을 수입하려고 했는데, 수출업자나 채굴업자를 만나기 어려워, 동생처럼 여기던 중국인 C씨를 미들맨으로 삼았다. 당시 시장에선 석탄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높아가던 때라, C씨가 “석탄을 확보하기 위해 선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1억 원 정도를 보내주었으나, 그 돈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의 한숨 소리가 제법 깊어 보였다. 이후 변호사를 구해 고소도 했지만, 돈을 회수하진 못했다. J선배는 B사에게도 일부 손해를 배상한 것 같았다. 중국 전문가의 ‘실전 중국 비즈니스’는 이렇게 씁쓸하게 끝났다. J선배는 지금도 중국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성공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그의 실패는 미들맨과의 ‘잘못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얼마 전 만난 건강식품회사 사장도, 중국에서 인증(認證)받는 데 1억 이상 자금을 투입했지만 결과가 없다고 하면서, 중간에서 일을 봐주는 사람에 대해 격한 언사를 풀어냈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들맨 없이 우리가 (중국)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기업이 초기에 중국에 들어갔을 때, 미들맨 역할을 해준 이들이 조선족이다. 이들 때문에 성공했다는 분도 많지만, 실패했다는 분들도 종종 만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만일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중국어도 안 되고, 문화도 모르는 우리가 시스템도 전혀 다른 중국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얼마 전 모 중앙지에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미들맨 이야기가 나왔다. 요지인즉 실리콘밸리의 창업 환경을 높게 평가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미들맨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투자자나 인수합병(M&A) 전문가도 아니지만 투자자 같은 사람들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쌓아 놓은 후 창업가를 발굴한 뒤 이들을 투자자 등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미국의 한 교수(대니얼 앨트먼)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에 지사를 낸다고 하자. 해외에 지점을 내려면 변호사부터 회계사, 통역사와 컨설턴트 등 수많은 중개인이 필요하다. 이들이 바로 미들맨이다. IT가 발전하고 개인 대 개인 접촉이 가능해지면서 미들맨이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미들맨은 자국의 문호를 개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미들맨의 중요성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처럼 투명하게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도 미들맨의 중요성이 높아지는데 아직까지 ‘꽌시(關係)’와 인치(人治)의 요소로 움직이는 중국 사회에서 미들맨의 역할은 간과할 수 없다. 오히려 매우 중요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 중국 근무시절, 수입상품 검사문제로 직원이 **시 상검국(商檢局 상품검사기관) 주임을 만나고 왔다. 그동안 쉽게 만날 수 없었기에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니 “통관(報關 관세 관련 업무 처리/H사)회사 사장이 다리를 놓았다”고 했다. 당시 무역관에서는 통관이 어려운 소비제품의 중국 내수 진출에 힘을 모았다. 이를 위해 직접 세관도 찾아다녔으나, 문제들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애면글면하던 차에 친척이 세관의 고위관리라고 하는 G사 관계자를 만나서야 통관문제가 해결됐다.
 
어쨌든 저간의 사정이 궁금했다. 내용인즉슨 그동안 해결사로 알던 G사가 아니라, 통관회사인 H사가 막후에서 작업을 다 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H사 사장이 지난 10년 동안 모 통관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지금의 주임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중국을 좀 안다고 해도, 외국인이 중국의 권력기관과 ‘탄탄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고, 따라서 ‘믿을 man(middleman)’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이후, 자칭 속으로 중국 전문가로 자칭했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창피한 일이었지만, 문제가 생기면 키맨(keyman)을 직접 찾는 버릇이 생겼다. 중재자를 통하기 위해 경로를 알아보는 경우도 빈번해 졌다.


지금 베이징으로, 상하이로 향하는 우리 기업인의 발걸음은 그칠 줄 모른다. 많은 기업인들이 직접 카운터 파트너(counter partner)를 만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미들맨을 두고 만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선 낯선 사람과 사업할 때에는 우선 의심과 불신이 앞선다. 광활한 대륙이라 ‘사고’나 ‘사건’을 친 뒤 도망갈 곳이 많다. 13억의 인구, 그 속에 숨어 있으면 한강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의 형국이라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잡아내기 어렵다. 게다가 자기만의 튼튼한 울타리(꽌시) 안에 있는 중국 사람을 상대로는 설령 내국인인 중국인조차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아니 가린다고 해도 응분의 대가를 받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중국 사업은 먼저 상대방을 탐색하고 신뢰를 쌓은 후에야 비즈니스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先做朋友,後做生意(먼저 친구가 된 후, 나중에 사업을 해라)’라고 했던가!
 
중국인 속에서 미들맨을 찾는 일반적인 방법은 ‘인연(因緣 꽌시)의 다리를 건너서’이다. 예를 들어 문제해결을 위해 키맨 주변을 살펴보다, 그와의 접근이 가능한 R씨를 발견한 후 R과 관계가 있는 사람(예를 들어 학교 동창)을 찾아낸다. 이후 그 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R과의 만남을 부탁한다. 만남이 성사되면, R이 “좋은 곳에서 대접 잘 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해준다. 만약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R은 기꺼이 중재자가 되길 원할 것이며, 동창과의 관계도 더욱 좋아질 것이다. 이는 곧 미래 고객이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음 기회에도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미들맨 수요가 늘어나는지 어떤지를 분석해 보면 재미난 사실을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꽌시’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사람만이 자유롭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4월 13일 중국 기율 및 감찰을 담당하는 기관의 신문인 ‘기검감찰보(紀檢監察報)’는 부패 행위에 대해, 지출과 수입, 비용(cost)과 이익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했다. 어떤 공무원(이하 A씨)이 있는데, 월 급여가 3600위안(월급과 보너스 및 보조금 등 포함)에, 연봉은 연말 상여금을 포함하여 45000위안에서 50000위안이다. 만일 A씨의 나이가 마흔이고 매년 5~8% 정도 급여가 높아진다고 가정했을 때, 60살 퇴직 직전까지 받을 수 있는 급여의 총액은 대략 120만 위안이 된다. 이후 80살까지 살아서 퇴직연금을 받는다면 추가로 총 80만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즉 A씨의 생애 기대 수익은 200만 위안이 된다. 만일 간혹 업무상 눈에 보이지 않는 뇌물을 수수한다고 가정하면, A씨의 기대수익은 가늠하기 어렵다.


즉 A씨의 뇌물수수행위에는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 200만 위안이 담보금으로 잡혀 있다고 보면 된다. “부패를 용인 않겠다”는 중국 5세대 지도자의 일갈로 부패는 줄어들겠지만, 반대급부로 ‘편의제공 비용’이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명예와 자유, 가정의 평화를 지키려는 A씨(중국인)는 어느 경우에 ‘편의’를 제공받겠는가? 한 마디로 받아서 탈 안 나는 경우에만 그럴 것이다. 현실적으로 외부로부터 ‘편의’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실력자/key man)이 몇 만 위안에 목숨을 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실력자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바로 중개인이다. 그는 실력자의 친구이기도 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사람이자,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미들맨의 가치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바로 협상 때의 중재 역할이다. 중국인의 언어나, 습관, 문화 등을 잘 모르고서는 협상에서 그들의 속내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중국 비즈니스맨은 직접적으로 속내를 드러내 말하지 않으며, 자주 화제를 바꾸고, 갑자기 말이 없어지거나, 뜬금없이 다른 질문을 하기도 하며, “부춰(不錯 ‘나쁘지 않네요’ ‘괜찮네요’의 뜻)”,“하이하오(還好 ‘뭐, 좋네요’)”,“하이싱, 하이커이(還行/還可以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의도를 모호하게 표현하거나 미묘한 부정어로 확실한 긍정을 피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중국인 또는 중국 사정에 정통한 사람만이 중국 협상자의 의사표현(감정, 어조, 얼굴표정과 제스처)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성미 급한 한국 사람이 중국인에게 자신의 제안에 대한 생각을 물을 경우,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일단 좀 살펴봅시다(看看)”,“생각 좀 해봅시다(研究, 研究)”다. 설사 그 제안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중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또는 “매우 좋네요(很好)”라는 말 속에서도 정말 좋은 것인지, 아니면 돌아가서 상의해서 결론을 내릴 것이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때 미들맨의 가치가 빛난다. 그가 끼어들어 도움을 줄 때 그는 언어해설자라기보다는 문화 해설자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때에 따라, 양측의 의견 차이를 순조롭게 좁혀주는 역할도 해낸다.


그렇다면, 어떻게 괜찮은 ‘믿을 man’을 찾을 수 있나.


중국에는 한국의 많은 정부 유관기관들이 나가있다. 이들은 대부분 우리 기업의 현지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상당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곳과 접촉하는 중국인 혹은 한국인들은 속된 말로 (큰)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선의를 가지고 다가온다. 정부 유관기관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주변에서 얻는 정보가 많다보니 현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아직도 정부기관을 방문하거나 관계자 만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 기관의 문턱은 매우 낮다. 서슴없이 만나라. 만일 ‘딱딱한 목소리’와 ‘경직된 자세’로 여러분을 대한다면, 쓴소리 한 번 하면 된다. 바로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중국의 정부(유관)기관이나 관련 협회도 잘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들과의 처음 만남이 어색할 수 있지만, 직간접적인 통로를 통해 일단 접촉하고 나면 나머지는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나랏밥 먹는(吃公家飯)” 사람의 생리는 어느 곳이나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한마디로 엉뚱한 사람을 소개할 가능성이 적다. 정부(유관)기관 사람이 관련 비즈니스와 관련된 부서의 장(長)으로 왔을 때, 앞서 말한 통관회사(H사)와 세관 주임과 같은 ‘꽌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대만 현지에서 우리 기업의 대만 또는 중국시장 수출을 지원해주면서 컨설팅 수수료를 받아 회사를 꾸려나가는 사장이 한 분(K 사장) 있다. 최근엔 의료 기자재 중국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데, 중국 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관련 협회나 유관기관을 접촉하고, 이를 통해 중국의 관계 회사들을 찾아내 거래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큰 돈벌이는 못 하지만 회사를 운영할 정도의 수익은 나온다고 했다.


세 번째 방법은 중국에 먼저 진출한 ‘선배’들의 도움을 받는 거다. 중국시장 개척을 혼자서 밀어붙이다가 실패한 사례를 많이 보아 온 필자로서는, 앞선 분들의 조언이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몇 자 적는 내용들도 상당 부분은 주변 분들의 경험과 입을 통해서 얻은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
 
상하이 근무할 때 알게 되었던 T 사장은 “백화점에 입점을 하든지, 다른 내수시장을 개척하든지, 임대매장을 얻는다든지 하는 초보 투자자들일수록 중국에서 5~10년 주재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사기꾼(?)으로까지 여기고 혼자 밀어붙이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생각을 가진 필자에겐 T사장의 말이 커다란 공명(共鳴)이 일었다. 다만 이 경우도 ‘만사불여(萬事不如) 튼튼’이다. 친구의 친구와 친구하기가 쉽지 않듯이, 소개받은 사람(기업)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인 검증이나 주변의 평가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다.


마지막은 ‘맨몸으로 다가서기’다. 2000년대 초반, 상하이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P사. N라면에 용기를 공급하던 회사인데, 당시 상하이 공장의 M 법인장은 중국어는 잘 못했으나 ‘FM대로 하기’를 통해 현지 정부(공무원)의 신뢰를 얻었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담당 공무원이 ‘믿을 man’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줬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며 내용을 가르쳐 달라하면서, 법을 준수해 나가려는 모습에서 믿음을 얻었던 것 같았다. ‘대지약우(大智若愚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라 했다. M 사장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였다.

2013-04-15 15:5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