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대만 Gateway to China - 미들맨(middleman) 2

한국과 단교하기 전인 1990년대 초반, 대만이 낳은 세계적인 가수 테레사 덩(중국 이름 덩리쥔 鄧麗君)의 ‘달은 내 마음을 알아요(月亮代表我的心)’이 거칠어진 감성을 보듬을 때, 해외 첫 근무지로 대만 발령을 받았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필자에게 해외 근무는 매우 낯설고, 어려운 시간이었으나 따뜻한 공기와 부드러운 바람, 선한 사람들과의 맥주 한 잔이 고단함을 잊게 해줬다.

해외 생활의 달콤함에 빠졌던 것도 잠시(2년)였다. 회사의 중국 사업이 폭증하면서, 1996년 후베이(湖北) 우한(武漢)으로 부임하라는 발령을 받고 힘든 여정을 시작 한 뒤 상하이(上海)와 칭다오(靑島)를 거쳐 다시 타이베이로 오기까지 대만을 잊고 살았다.


필자의 대만에 대한 감정은 좀 남다르다. 입사 후, 중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타이베이에 보내져(1991년) 1년간 중국어를 배웠고, 첫 해외 근무를 대만(2년)에서 했던 까닭에 좀 각별하다. 특히 1992년 한국이 일방적으로 대만과 단교를 통보해-다소 주제 넘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개인적으로 부채의식도 좀 있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말과 행동을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작년 8월, 15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온 대만은 옛날 모습 그대로 나그네를 반겼다. 따뜻한 눈으로 타이베이를 다시 보기 시작하자, 새로움이 다가왔다.

“Gateway to China”

대만은 인구 2300만 명에 경상남북도 크기의 작은 국토를 가진, 과거 UN의 5대 상임이사국의 하나로 국제사회 리더그룹의 역할까지 한 나라다. 그만큼 번영의 시기를 누린 적이 있는 나라로서, 우리에겐 상해 임시정부 시절과 6.25 때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국가다.

최근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우리의 위상이 크게 올라가면서, 대만을 한 수 아래로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아직도 대만이 우리보다 앞서는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한국과 대만은 상호 5대 교역국의 하나로서, 반도체, LCD, 화학, 철강, 태양광, LED 등 주력산업에서 세계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대만의 경쟁력은 우리와 트레이드 오프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만의 새로운 모습을 거론할 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중국과의 관계(일명 兩岸관계)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중국(당시 국민당 정권)에게 양도된 대만에 장개석 정권은 국부군을 파견했고, 1949.12월엔 아예 ‘중화민국’ 정부가 이전했다. 이때 수많은 친인척을 뒤로 하고 국민당 정권과 함께 대륙에서 같이 온 사람들은 ‘외성인(外省人)’이라고 부른다. 대만이 아닌 다른 중국 지역의 출신이라는 뜻이다. 이와 반대의 경우가 오래전부터 대만에 거주해 오던 사람들로, 보통 ‘내성인(內省人)’이라고 적는다. 현재 인구의 약 80% 정도로 사실 상 대만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외성인을 포함한 많은 대만 기업인이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부터 홍콩 등 제3국을 통해 중국에 진출했고, 덩샤오핑이 2차로 개혁개방의 의지를 천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 1992년) 이후에는 돈 보따리를 싸들고 물밀 듯이 들어갔다. 지금(1991년~2011년)까지 공식 집계된 대중국 투자 대만 기업은 3만8000개사에, 투자금액은 1117억 달러에 달한다. 1991년 이전에 들어간 기업과 조세 회피지역을 경유해서 들어간 숫자를 제외한 규모다.

중국에서 성공한 대만 기업의 면면을 보면,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이나, 만두로 유명한 딩타이펑(鼎泰豊), 쌀 튀김 과자 업체인 왕왕(旺旺), 라면업계의 1인자인 캉스프(康師傅) 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체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 IT부품이나 중간재, 일반 기계류 등 일반인에게 생소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대만 기업이 중국에서 일궈낸 수많은 성공은 기업의 내부적인 경쟁력이외에도 언어가 같고, 문화나 의식구조가 유사하며, 여기에 물보다 진한 피가 섞인 ‘꽌시의 튼튼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기업인이 얼마나 중국사회에 녹아있느냐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월간 ‘전망과 탐색(展望與探索 2013.4)’에 따르면 2012년 상반기 기준 대만 기업인 32명이 중국의 정치협상회의(일명 政協)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밖에 인민대표나 지방정부의 고문 등으로 130여명이 활약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물밑에서 중국정부와 협조하는 수많은 기업인을 제외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한국 무역관과 가깝게 지내는 A사(對韓투자업체)의 張회장 가계(家系)는 출신지역이 귀주(貴州)성이다. 유명 전기·전자 업체인 T사의 黃회장도 대륙계인데, 중국에서의 사업이 일로 번창중이다. 중국 근무 때 간간히 목도했던 지방 도시 주재 대만기업 협회 임원과 정부인사와의 짝짓기 모습이 생각난다.

이처럼 대만 기업인들은 문화와 언어, 혈연과 비즈니스로 이어진 ‘꽌시’로 인해 비즈니스 상의 적지 않은 어려움과 장벽에도 중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에 대만이 가진 장점을 활용하고자 하는 외국 기업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가장 적극적인 곳이 일본이다. 이미 2004년 후지츠 연구소는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대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난징(南京)대학살 등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중국시장에서 고전하던 일본이 대만을 전위대로 삼아 중국시장을 확대하고 하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대만에 진출한 일본기업(약 2,000여개)이 대만 파트너와 중국시장을 함께 공략하는 것도 중국에서 대만과 일본이 활발하게 협력하는 요인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제조업 분야에선 일본의 닛산과 대만의 위룽(裕隆) 자동차가 중국 지리 (吉利) 자동차와 협력하여 2009년부터 대만 먀오리(苗里)와 중국 항저우에서 슈퍼미니카 ‘TOBE’를 생산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분야에선, 일본의 미스터도넛, 7-11이 대만의 통이(統一) 그룹과 함께 중국시장공동 개척에 나서 단기간에 매장 확대에 성공했다.

한편 미국기업과 대만기업과의 전략적 제휴 관계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캉스프(康師傅)는 자사 지분 5%를 펩시에 양도하는 대신, 펩시콜라의 중국내 24개 공장 및 일부 독자 브랜드 대리권을 인수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펩시콜라 입장에서는 캉스프의 중국내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한국기업과 대만기업과의 협력사례도 간간히 보인다. 진드기 청소기, 로봇청소기 등을 생산하는 B사는 대만 에이전트를 통해 중국내 백화점, 홈쇼핑, 할인매장에서 판매했고, 나중에는 양사간 지분투자를 통해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S사 등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대만 바이어를 통해 AUO, TSMC 등의 중국 공장에 설비를 납품하고 있다.

특히 대만의 대표적인 IT 기업인 B사의 자회사 B~Medical은 중국 N시와 S시에 각각 3000bed, 1500bed 규모의 병원을 설립 운영중인데, 자신들의 채널을 통해 한국산 의료기기를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우리기업들은 중국 진출 초기에 조선족 동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쁜 결과도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도 매우 많다.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노하우를 쌓아가면서 독자적인 진출을 꾀하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독자 진출 시 현지 사정에 어둡고 네트워크가 부족한 우리기업이 부담해야 할 리스크가 큰 것이 사실이다. 이제 또 다른 파트너, 아니 middle man이 필요하다.

타이베이에 주재하는 D사의 L이사. 대만기업과 중국기업과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대만기업은 부도가 나도, 나중의 여지를 생각해서 미안하다는 한마디와 함께 최소한의 원금은 갚는데, 중국기업은 나 몰라라 해!”

시장경제도 이해하고, 중국사정에도 해박한 대만기업이 우리의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 길 돌아서 다다른 결론이 ‘Gateway to China’ 다.

대만기업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작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중국에 판매 네트워크(법인, 지사, 유통망 등)를 가지고 있는 업체 131개사를 접촉하여, 한국기업과의 중국시장 공동 진출 의사를 물어 보았는데 이중 85개사가 커다란 관심을 표명했다.

이중 대만의 60대 기업에 포함되는 T그룹 회장단의 한명은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좋은 제품을 중국에 가져다 파는 것을 생각했었다”고 했다. 佳醫健康이란 회사는 중국최대의 의약품 회사와 합작으로, 상하이에 禦佳醫療服務公司를 설립해서, 미용과 건강관련 사업을 진행중인데, 한국기업과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희망하고 있다.

물론 지금처럼 對중국 직접 마케팅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좋은 물건을 가지고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고도 적합한 인물(right person)을 찾지 못하는 일부 중소기업의 경우는 대만 기업과 손잡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2008년 친 중국 성향의 마잉지우(馬英九) 정부가 집권하면서 양안관계는 해빙기를 맞았고 ECFA (FTA와 유사한, 단 레벨이 한 두 단계 낮은 경제 협력 협정) 체결로 경제 협력이 더욱 긴밀해 지면서, 이제는 대만은행에서 위안화 구좌를 개설할 정도까지 됐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 했다. 여유를 가지고 쿠션한번 돌려보자. ‘발상의 전환’은 모든 영역에서 펼칠 수 있는 자세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방법, 여러 모로 뛰어난 대만의 파트너를 활용하는 것도 분명 발상의 전환이리라.

2013-04-30 16:0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