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화 협상- 시간에 대해

산동성 랑야타이(琅琊台)란 곳이 있다. 진시황이 신하 서복을 시켜 불로장생약을 구하라 지시하자, 서복이 수 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이끌고 동해로 배타고 떠난 곳이다. 서복이 중간에 기착한 곳이 제주도란 설도 있다. 이 때문인지 제주도에는 중국에서 기증한 서복 동상이 있다. 제주도는 중국의 서복 동상 기증에 공헌이 큰 칭다오(靑島) 한국 총영사관에 돌하루방을 기증하기도 했다.

 

랑야타이(琅琊台)란 이름은 관광지 보다는 술로 더 유명하다. 산둥(山東)성을 대표하는 명주로,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주는 70도짜리 배갈도 있는데, 칭다오에서 근무할 때 현지 세관 관계자와 랑야타이(琅琊台)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현안이 하나 있었다. 질이 뛰어나고 안전한 한국 우유를 들여와 중국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일이었다. 그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신선한 한국 우유(서울우유, 매일우유 등)의 당일 통관에 절대적인 도움을 준 세관 공무원과 저녁을 하기 위해 세관이 있는 황다오(칭다오의 한 행정구역 명칭)에 갔다가, 밥 먹기 전에 유명한 술 공장이나 한번 가 보자고 해서 그의 뒤를 따라간 것이다.

 

공장은 외양이 다소 허술해 보였으나, 규모는 대단했다. 특히 술을 보관하는 장소에 가보니, 큰 항아리들이 즐비했다. 수 십 개의 높이는 1m가 족히 넘었고, 둘레도 장정 한 두 명이 서로 손을 잡아도 좋을 만큼 컸다. 그 항아리에는 술이 가득했다. 제조한 지 5년 지난 것, 10년 이상인 것, 그리고 특정 연도를 염두에 두고 만든 듯한 술, 예를 들어 1988년에 만든 것 등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술을 좋아해서, 연도를 달리해서 한 잔씩 마셔보았다. 오래된 술일수록 깊이가 있었는데 1988년 생산된 술은 그 동안 마셨던 배갈 가운데 가장 풍미가 좋았다.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그것도 잠시였다. 이어 50년의 역사를 지닌 술과 만났다. 그 순간. 아!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음과 고상함, 거기에 살짝 여성스러움이 담긴 술맛을 느꼈다. 이후 한동안 나는 랑야타이(琅琊台)와 사랑에 빠졌다.

 

50년


 
 90년 만의 꿈을 이룬 싼샤댐의 전경.

우리식으로 부를 때 흔히 ‘삼협댐’이라고 하는 곳이 있다.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의 취탕샤(瞿塘峽)·우샤(巫峽)·시링샤(西陵峽) 등 험준한 협곡 싼샤(三峽:장강삼협)의 거대한 물줄기를 담는 세계 최대의 댐으로, 1919년 손문(孫文)이 최초로 제창했다. 이어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92년 장강(長江) 싼샤 프로젝트 건설이 결정됐고, 1994년 정식으로 공사를 시작해 2006년 완공했다. 최초 제안이 있은 뒤 약 9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댐이다.



풍부한 수량의 남쪽 강물을 북쪽으로 끌어가는 '남수북조'의 공정 모습.
 

남수북조(南水北調)라는 프로젝트도 있다. 늘 물이 부족한 북쪽에 수량이 풍부한 장강의 물을 활용하기 위해 마오쩌뚱이 1952년 장강(長江)과 화이하(淮河)、황하(黄河) 등을 물길로 잇는 사업을 주창했다. 수(隋)나라 양제(煬帝)의 대운하를 생각케 하는 대규모 토목건설 사업으로 총 사업기간 50년, 2050년 완성을 예상하고 있는 100년짜리 사업이다.



100년

 

make dream come true. 중국에 대한 강연을 할 때 애용하는 말이다. 중국인에게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유용한 도구는 만만(慢慢)하고 유장한 시간이다.

중국인의 시간에 대한 관념은 지금의 우리하고 좀 다르다. 오래 동안 농경사회를 유지해 오고, 지금도 인구의 43%가 농촌인구인 중국에선,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쉰다)”이나,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一茶頃 (차 한잔 마실 시간)’이나 ‘一柱香 (향하나 피울 시간)’의 세계관이 많이 남아있다.

 

드넓은 대륙에서 살아 온 중국인에게 자신이 가진 시간의 크기는 너무 작았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쉽게 느끼겠지만 운송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 단순히 옆 마을에 일보러 가는 데에도 며칠씩 소요됐을 것이다. 가진 시간의 크기가 작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을 쌓는데 능숙해 져,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넘어도 늦지 앉다(君子報仇,十年不晚)"라는 월(越)나라 왕 구천(勾踐)의 고사가 있듯이 시간에 순응하고 이와 ‘어울려’ 기회를 잡아가는 자세가 발달했다. 어리석은 노인네가 마침내는 산을 옮기고 말았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모습이 뚜렷하다.

 

여기에 전란과 자연재해, 그리고 위정자의 패악으로 점철된 역사 속에서 체득한 복지부동의 처세술에서 중국의 독특한 만(慢)문화가 탄생했다. 자신의 안위와 안전을 위해 주변을 살피고 이해관계를 따지며, 거듭되는 확인을 거쳐 행동하는 신중함이 몸에 뱄다. 중국에 며칠만 있더라도, “만쩌우(慢走)”, “만용(慢用)”, “만만라이(慢慢來)” 등 생활 속의 느긋함, 즉 ‘만(慢 천천히)’의 행동 양식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김순철.

 

내 기억으론, 1970년대 후반이다. 지금은 사라진 TBC란 방송국에서 방영된 연속극 ‘결혼행진곡’에서 순박하고 개성 강한 얼굴의 김순철씨가 ‘바쁘다 바빠’를 연신 내뱉으며, 웃음을 주던 모습이 생생하다. 당시 ‘얄개’로 유명했던 이승현씨의 “인생무상, 삶의 회의”라는 유행어나 장미희씨가 즐겨 들었던 ‘비목’이 전국을 강타하기도 했었다.

 

해방과 6.25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가동되고, 농촌에서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 ‘속도’란 괴물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했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착하는 현상도 나타나는 등 긍정과 부정의 갈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사회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수많은 ‘김순철’씨가 재계에 가득하다.

 

속도와 결과에 만족해 온 우리가 제2, 제3의 도약을 위해 중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과연 중국(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까. 속도에 집착하면서 긍정적인 결과도 많이 봐왔다. ‘현대속도’라는 말이 있듯이 2003년 중국에 진출한 현대 자동차가 상하이 폭스바겐이 5년, 이치 폭스바겐이 20년, 둥펑 닛산이 20년 걸린 연간 100만대 생산시설 구축을 불과 10년 만에 해냈다. 상상하기 힘든 초스피드다. 거기에다 시장 점유율 10%(현대+기아)를 넘어서는 기적 같은 일을 해 냈다.

 

반면, 또 다른 많은 기업들이 회장님이나 사장님의 ‘재촉’ 때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천천히 빨리” 가라는 말을 하곤 한다. 속도 보다는 방향성, 그리고 꾸준함을 키워주고 싶어서다. 중국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에게 똑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다.

PC 브랜드 업체가 중국 현지 관료 등의 환대에 현혹되어, 투자환경을 제대로 점검도 하지 않고 원부자재 공급망이 부실하고, 물류도 불편한 내륙으로 들어갔다가 망가져 나왔다. 또 다른 S사는 회사를 빨리 설립해야 한다는 이유(당시 시장이 좋기는 했었다) 때문에 실제론 하나의 회사인데 여러 개 법인으로 쪼개어 진출했다.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지금은 매우 곤혹스런 처지에 빠졌다. 존립 여부도 불투명할 정도다.

 

협상장에서도 이런 모습이 종종 보인다.

 

최근 대만 바이어(Z사)와 한국 수출업체(A사)와의 분쟁이 생겼다. A사 사장님은 조금 급한 성격에 화끈함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다. Z사 사장은 전형적인 중국인(대만사람)이다. 양측은 구두로, 그리고 이메일을 통해 어느 정도 거래의사를 밝혔다. A사 사장이 대만엘 왔다. 올 때, ‘이번 방문에 꼭 거래를 성사시켜야지’ 라며 본인 스스로 시한을 정했다.

 

물론 상황을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여겼다. 계약서와 그동안 오갔던 메일을 쭉 정리해 가지고 왔는데, 놀라운 것은 계약서(?)를 보니 수량은 기재되어 있지만, 가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상태였다. 가격에 대한 이야기는 구두와 이메일로 오고갔기 때문에 최종 메일에서 언급된 가격을 계약서상의 가격으로 이해하고 왔다는 것이다.

최근 대만 시장 환경이 녹록치 않다. 그래서 Z사 바이어는 그동안 오갔던 계약(?) 내용의 수정을 원했다. 그러자 A사 사장님은 계약서에 언급한대로 거래를 진행해야 하는데, 왜 진행하지 않느냐고 약간 윽박(바이어의 표현에 따름)지르듯이 이야기를 했다.

 

두 사장님간의 이야기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돌면서 결국은 결론을 맺지 못했다. 나중에 Z사 사장과 식사하면서 물어보았다. Z사 사장은 시장도 시장이려니와 A사 사장님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거래라는 것은 서로의 합(合)이 좋아야 하는데, 한국 사장님이 너무 자기 입장만 세우고, 바이어의 상황을 전혀 헤아리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했다.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 Herb Cohen이 ‘you can nagotiate anything’이란 책에서 제시한, 협상에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세 가지를 보자. 1.power, 2.time, 3. information이 있다. A 사장이 이번 협상에서 실패한 것은, 대만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협상 시한을 스스로 못 박아 두면서 운신의 폭을 줄여 놓다보니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혹은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스스로 맥이 빠져 버리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Y시에 골치 덩어리 건물이 있다. 한국의 R사가 투자했는데 성과가 너무 안 좋았다. R사가 처음 투자할 당시, 자기 분야 (**제조)가 아니어서 주저했었는데, 현지 정부 고위관료가 “투자하면 적극적으로 밀어 주겠다”는 한마디와 기존 투자 회사 현지 사장의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자신감’에 근거하여 전격적으로 투자가 단행됐다.

 

동 건물은 처음부터 R사가 투자한 것이 아니다. 다른 회사에서 짓다가 자본 조달이 여의치 않자, 공사를 중단했고 이에 현지 정부 관료가 이를 사 줄 착한(?) 사람들을 찾는 과정에서 R사가 눈에 들어왔다.

 

어쨌든 투자가 이뤄지고, 건물을 완공했다. 아마도 중국회사가 짓는 것에 비해 갑절이상의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일부 업체가 입점하고, 개막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런데 영업이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이에 입점업체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고, 급기야 건물 전체의 사용이 중단(?)되었고, 매각을 추진했다.

 

이때 바람처럼(?) 한 사람이 나타난다. L사장. B시에서 사업을 하는데 듣기로는 보따리상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R사 회장님 인척에게 접근하여 쇼핑몰 매입의사를 전했다.

 

R사 회장님은 급한 마음에 충분한 검토도 없이, 매각을 진행했다. 문제가 생겼다. L 사장 뒤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매입조건으로 건물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후, 매수하겠다"는 이야기다. 계약서(초안)는 중국어로 되어 있었는데, R사에서 이 구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진행과정에서 이 조건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거의 계약 성사단계에, R사의 중국 전문가가 동 구절을 발견하고 진행을 급히 중지시켰다.

 

후배 한명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중국내 사업을 접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집을 팔아야 했다. 그런데 이 친구도 위에 적은 상황처럼 유사한 조항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약을 체결, 한참을 법정에서 시간을 보낸 후에야 계약을 해지했다.

 

상대방의 다급함과 중국(또는 중국어)에 대한 이해 부족이 부른 사건으로 보면 좋다. 바야흐로 중국인과의 사업이나 협상에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please !

 

 

 

 

2013-08-02 16: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