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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3 올해도 그놈이 와버렸습니다
제목 2013.02.13 올해도 그놈이 와버렸습니다
작성자 이동익 (ip:)
  • 작성일 2013-02-13 17:19:50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1969
  • 평점 0점

지난주부터였던가요? 사무실 여직원들 서넛이 탕비실 인근에서 속닥속닥 작당 모의하고 있는 광경을 적발했습니다. 뭔가를 주문했다는 소리, 뭘 어떻게 만든다는 소리, 올해는 포장을 어떻게 할 예정이라는 온갖 불편한 소리들……. 순간 본능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뇌의 전두엽까지 파생된 생각이 저의 하찮은 뉴런을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그놈이 와버렸군.’

 

“남자들은 초콜릿 하나도 안 고맙다”, “차라리 돈으로 줘라”, “철저히 상업적인 접근에 농락당하는 가여운 여아들아” 등의 애정이 듬뿍 깃든 조언을 한참이나 어린 여직원들에게 퍼부어 댔습니다. 그때 막내사원이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는 눈보다 빨랐습니다.

 

“이거 만들다가 망친 거 하나쯤은 드릴 수 있어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동정하려면 돈으로 달라고. 그리고 그새 D-1이 되었습니다. 밸런타인데이 전날, 이상한 에디터의 괴상한 정신세계를 개봉해 드립니다. 거부는 거부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요? 신이 아니고서야 그런 사람은 없을 거예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평생 노력합니다. 그 수많은 결핍 중 ‘사랑’이라는 속성은 누구나 고민하는 보편적 내러티브를 구현합니다. 다시 말해, 결핍은 언제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는 노래가 될 수도 있고, 연극이 될 수도 있습니다. 표현방법의 차이일 뿐 본질은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거죠.

 

지금부터 저는 그중 노래 가사에 주목하려 합니다. 세상 누군가의 결핍이 어떤 이야기가 되어 불렸는지를 살펴보려고요. 왜냐하면 내일은 밸런타인데이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날이니까요.

 

 

<Sweet Sorrow, 「SweeticS」(2008)>

 

갑자기 첫눈이 내릴 때

로맨틱코미디가 씁쓸할 때

무슨무슨 데이라고 떠들 때

그럴 때만 빼면 난 괜찮아

 

(중략)

 

공짜표는 꼭 두 장일 때

생일선물은 미역국뿐일 때

자꾸 축의금만 나갈 때

그래 솔직히 난 안 괜찮아

 

언제까지 이래야 돼 속상해죽겠네

답도 없지 (처량한 내 신세)

내 마음을 통째로 안아줄 그런 사람 누구라도

Come on - 당장 - 후딱 - Baby!

 

 

-Sweet Sorrow, <내 님은 어디에> 中

 

 

여기 또 한 명의 동지가 있습니다. 그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원래 로맨틱코미디는 보고 나면 씁쓸한 게 정상 아닌가요? 무슨무슨 데이라는 건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상술의 표상인 것이고요, 1인 2매를 주기 전에 혼자 볼 건지부터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얘네들도 짝이 있는데...>

 

화자는 처음부터 본인의 속마음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습니다. “갑자기 첫눈이 내”리는 것부터 화자는 우울함을 마중 나가는 기분일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로맨틱코미디가 씁쓸”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꽤 성숙된(숙성 아닙니다) 솔로이기 때문이죠. 다들 아시겠지만, 안 좋은 예감은 틀리기 쉽지 않습니다. 이 불편한 기분은 “무슨무슨 데이”라고 특정된 ‘그들만의 축제’를 소환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의 화자는 “그럴 때만 빼면”이라는 조건을 달며 ‘꽤 괜찮다’, ‘나쁘지 않다’는 뉘앙스로 쿨워터향을 뿜어줍니다.

 

노래는 2절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됩니다. 화자는 공짜표가 왜 꼭 1인 2매여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관습을 꼬집으며 진중권급의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생일선물은 미역국뿐일 때”라는 부분을 봤을 때 우리는 화자의 인생에서 그런 생일이 한 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정말 꽉 찬 솔로인 것이지요. 그 위엄은 다음 가사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자꾸 축의금만 나”간다는 건 지금까지 일상처럼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잠재적 사실을 인정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사건은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그렇게 굳은 신념의 화자가 스스로의 의지를 꺾는 모습이 “그래 솔직히 난 안 괜찮”다는 가사에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GRD ASKY: 그.래.도.안.생.겨.요>

 

사건은 필연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언제까지 이래야 돼 속상해 죽겠네”라는 가사를 보면 내재적 자아가 외재적 자아와 충돌을 일으키고 말죠. 흡사 ‘천사와 악마’의 대립구도를 오마주하다시피 한 작가의 의도가 극적으로 도출된 부분입니다. 이후 “답도 없지 (처량한 내 신세)”에선 자신을 책망하며, 무능력과 환경을 탓하는 관조적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듣는 이에 따라 각기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텐데요, 가령 백해무익한 커플의 경우 해학적인 느낌의 위트로 받아들일 거예요. 그러나 전지전능한 솔로의 경우에는 분명 가슴 한켠에서 찌릿하게 올라오는 아리디 아린 정서와 함께, 당장이라도 두 눈물을 쏟아내는 퍼포먼스가 가능할 정도의 서정적인 문맥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후 등장하는 강력한 가사 때문이지요.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그에 머물지 않고 냉혹한 세계로 한 발짝 이탈하고자 하는 선전포고가 이 노래의 전체를 장악해버립니다. “내 마음을 통째로 안아줄 그런 사람 누구라도/Come on - 당장 - 후딱 - Baby!”라는 클라이맥스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정적인 자세와 호전적인 자세의 융합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컴온, 당장, 후딱, 베이비’로 이어지는 휘모리장단급의 추임새는 어떤 절실함과 자신감이 한껏 묻어나는, 가히 이 노래의 주제의식을 아우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칫 찌질할 수 있는 화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선뜻 도전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노래의 후렴구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셈이죠.

 

이처럼 ‘내가’ 좋아하게 된 노래의 가사에는 나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가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어떤 결핍에서 오든, 아니면 결핍되는 과정에서 오든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분명한 것은 내일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과 여기 그 말도 안 되는 ‘데이’를 시덥지 않은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까불다가 새해 첫 제압당하는 장면을 보고 계십니다> 

 

엄마 보고 싶다.

 

 

from 이상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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